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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트 시날 맞지?
데이트를 하긴 함
ㅇ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세카가 무서워서
[하민진] [오후 10:04] 하고 싶은데
[하민진] [오후 10:04] 진짜 개
[하민진] [오후 10:04] 시궁창같은
[하민진] [오후 10:04] 시날밖에
[하민진] [오후 10:04] 없음
까진 아니고
근데 잠시만요 시트 쓰기 전에
그럼 그냥 펄프 아닌걸로 가보자 올만에
60 운
아 펄프 아니면 체력 12여요
스탯이 조정되어서 글쿠낭
시트 수정 완
바람?소리도
들리닝

:고개를 돌리는 순간, 먹먹해진 귓가에 그제서야 틀어박힌다.
바닥을 긁는 엔진의 소음,
낯이 익은 검은 세단.
어둠을 강렬하게 찢는 헤드라이트가 두 눈을 멀게 하는 순간, 머릿 속도 함께 하얘진다.
'형님!'
목소리가 귓가에 박히는 순간, 쇳소리 같은 비명과 함께 몸이 허공으로 튕겨 오른다.
:충돌의 충격이 장기까지 울린다.
순간적으로 시야가 뒤집힌다.
칠흑 같은 바다 위에 떠 있는 선적들의 불빛과 가로등 빛이 정신 없이 뒤엉킨다.
귀에서 윙 소리가 울리고, 주변 소음이 멀어진다.
공중에 뜬 몸은 마치 천천히 가라앉는 깃털 같지만, 그다음 순간 손등이 컨테이너 벽에 스치고,
차가운 난간에 등어리가 내팽겨쳐진다.
:둔탁한 충격음과 함께 순간적으로 폐가 쪼그라드는 느낌,
그러고는—
몸이 허공에서 무너진다.
칠흑 같은 바다가 입을 벌리고 있다.
중력이 뒷덜미를 잡아끈다.
귓가에 바람이 울리고, 찰나의 순간, 얼음장과도 같은 냉기가 온몸을 감싼다.
:검은 바다는 당신의 몸과 의식을 깊이, 깊이,
집어삼킨다.




:의식이 얕은 물 속에서 찰랑댄다.
무겁게 닫힌 눈꺼풀, 검은 시야 아래 느껴지는 것은 오로지 청각을 통한 것들 뿐.
깊은 심연 속에서 소리가 들려온다.
의자가 바닥에 끌리는 소리, 문이 열렸다 닫히는 소리, 이불이 사각대는 소리.
그리고 누군가의 낮고 다정한 속삭임까지.
내용은 알아들을 수 없지만 이건 분명 아는 목소리들이다.
:얼핏 낯선 사람의 것이 들리는 듯도 하다.
그래, 분명 이것은 여러 소리의 합주.
그러나 조금씩, 그리고 천천히 모든 감각이 더 깊은 곳을 향해 잠들기 시작한다.
그렇게 멀어지다 어느 순간 모든 것이 무로 돌아간 듯 무료해지고 만다.
속삭임도 그쳤으니 더없이 깊은 잠을 잘 수 있겠다.


:DAY 1.
언제부터 잠에 들었던 걸까.
얼핏 어디선가 새소리가 들린다.

더 잔다.
:눈 앞이 흐리고 몸이 녹초가 된 양 무겁다. 쉽게 일어나지는 못한다.

이불을 옆으로 치워본다.
:몸을 덮은 천을 치우면 아찔하게 높은 천장이 보인다.
아무리 봐도 낯설다.
여긴 어딜까.
누워 있던 곳은 너비가 충분한 소파.
몸에 덮여 있는 것은 굵은 실로 얼기설기 짜낸 담요다.

:입 밖으로 튀어나오는 제 목소리가 영 껄끄럽다.
그리고 이상한 건... 조용하다.
너무나도 조용해서 남의 집에 잘못 온 기분이다.
이게 무슨 소리람.
당연히 남의 집이지.
:태어나서 처음 보는 곳이 남의 집이 아니면 어디겠나?

"음?"
어제 밤에 내가 뭘했는지 떠올려본다.
생각나는 게 있나?
:그게 문제다.
아무 것도 기억 안 나거든. . .
눈살을 찌푸리던 그 때, 집 문의 불투명한 창문 밖으로 누군가의 인영이 비친다.

잘 입고 있나?
:평소에 편하게 입고 있던 옷을 입고 있다. 흰 티셔츠에 회색 스웻팬츠.

우선 담요를 치우고 일어선다. 멋쩍은 기색으로 창문 밖에 누가 있는지 확인한다.
:상체를 일으키면 보이는 것은 당신에겐 조금 익숙한, 곧장 누군가를 연상시키는 그런 인영이다.
하지만 그 실루엣을 보는 것은... 매우 이상한 일이다.
묘한 기분에 휩싸이고 만다.
생각을 거치기 전 문이 열린다.
카일이 입을 가린 채 하품을 하며 들어온다.
얼굴을 보자마자 드는 생각은,
:어쩐지 제법 오랜만이라는 느낌이다.
두 번째로 드는 생각은,
살 빠졌네.

"뭐야... ."
싱긋 웃는다. "물레 바늘에라도 찔린 줄 알았네."

태평한 태도를 보니 묘하게 경계심이 든다.
"뭐야." 받은 인사를 돌려준다.
:관찰력 판정.
:실패.

:아니?
시야가 왜 이렇게 흐릴까.
눈을 비벼본다.
그 뿐이 아니다.
일어서려는 몸이 휘청거린다.
무릎이 욱신거리고 어깨가 뻐근하다.
:몸이 불편한 것은 착각이 아닌 것 같다.
1D4를 굴립니다.

:왼쪽 발목에 심각한 통증이 느껴진다. 눈이 찌푸려질 만큼.
지금부터 근력과 건강, 민첩 판정에 페널티 주사위가 붙습니다.

일어나려던 그대로 주저 앉아서 눈살을 찌푸린다.
소파에 있던 쿠션을 들어 카일에게 던진다.
"뭐야!"

웃는 낯으로 쿠션을 잡는다.
순간적으로 표정이 바뀐다.
아, 진짜... ...

"좀 어때?"
:그는 장갑을 낀 손으로 소파를 짚곤 걸터앉는다.

거의 놀리듯 말한다.
:웬 장갑이람.

죽을 맛이라는 표정이다. 안색이 나쁘고 구겨진 얼굴이 펴지지 않는다.
"뭐냐니까."
:글쎄, 괜찮다고 할 수 없는 상황이다. 머리는 띵하고 눈은 어째 흐리고, 몸이 전반적으로 내 것 같지 않다. 왜 우리가 여기에 있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기억이... 어딘가에서 끊겼는데 그것마저 제대로 생각이 나지 않는다. 안간힘을 써보지만 여전히 어딘가 텅 빈 기분을 지울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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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내가 누군지, 눈앞의 사람이 누군지는 아는데... 기억의 어디부턴가 싹둑 잘려나간 것처럼 느껴진다. 그것도 제법 긴 시간이...
혼란스럽다.
그러니까 이성 판정 (0/1)
:성공.
그저 불쾌하기만...


눈빛에 불쾌감이 스치는 것을 읽어내면,
“다음엔 녹음기라도 틀어두는 게 낫겠군.”
고개를 훼훼 젓는다.

"물어보면 물어본 말에 대답 좀 해."

"웨인 항구에서 알바니안 놈들과 계약서를 쓴 것, 기억 나나?”
:안 난다.

안 난다.

"보복을 당했어."
"조항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너를 차로 갖다 박았더군."
"네가 쓴 조항도 아닌데 말야, 그렇지?"
:믿기지가 않네.

입 꾹 다물고 카일을 본다.

:뼈가 시리다더니.

걔들 그럴 줄 알았다며 중얼댄다. 하지만 몰랐을 것이다.

"몰라, 왜 그렇게까지 했는 지는. 역시 가서 성질 부린 것 아냐?"
네 탓도 슬쩍 해본다.

"내가 그렇게 됐는데 알바니아 친구들을 가만히 둔 건 아니겠지?"

"레오네가 깨어나면 미안하다고 전해달라더군."
"네게 기회를 줬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고 말야."
"그러니까, 내 말은..." 바닥을 보며 턱을 매만진다.
소파 위로 조금 더 올라 앉으며 매튜를 본다. 반질한 얼굴로, "지금은 모두 불가사리와 놀고 있을 거야. 아쉽게도."


"이 이야길 들으면 왜 레오네가 아쉽게 되었다고 말했는 지 알 수 있을 거야." 그런 표정도 못 지을 걸.
"일단, 넌 거의 다 나았었어."
"... ... ." 검지로 뺨을 긁으며 잠깐 매튜를 본다.
:뜸을 들이고 있는 것이 느껴진다.
괜시리 갑갑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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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션을 꽉 쥔 주먹을 흘깃하곤, 랩을 하듯 말한다.
"퇴원할 즈음에 간이 부은 또라이 새끼들이 병원을 습격했어."
:그 치들이 배가 갈리고 싶어 환장한 놈들이라는 건 진즉 알고는 있었지만.
내가 뭘 그리 잘못했는데?

"모르겠군. 고층이었다면 작자들이 널 빼내겠다고 창 밖으로 던졌을 때 이 걸로 끝나지 않지 않았을까?"
제 관자놀이를 톡톡 친다.
“안정을 취할 때까지 입원해있을 예정이었는데, 병실 습격 사건 이후로 레오네가 널 바로 퇴원시켰어.”
:그렇다.
전반적으로.
San 0/1


"아니."
"여기가 어딘데?"

“안전 가옥이야. 매튜.”
"요양을 할 거야. 한 두 주 가량? 레오네로부터 전언이 오기까지 말야."
"이 일로 저 밖에선 난리통이거든. 아마 예상은 가겠다만..."
"우린 여기서 먹고 놀고 마시다가 정리되면 돌아가면 돼."

"신경쓰이는 점이 있는데..." 손으로 목덜미를 긁으며 말한다,.
"내가 계속 오락가락 했나? 지난 몇 주간?"

"여기 올 때부터 그랬어. 병원에 있을 때는 기억하고 있었거든. 무슨 일이 있었는 지 레오네에게 설명한 것도 너였어."
"창 밖 화단에 머리를 부딪힌 것 같더군."
"병실 습격 때 말야."
"그 뒤론 영 오락가락이야."

"걔들 지금 어디 바다에 있다고 했지..."
의기소침하여 소파 등받이에 기댄다.


"바깥 사정이 복잡해졌다며. 거들어야 하는 거 아냐?"
:그러고보면 그렇다. 듣자하니 병실-습격-사건 이후로는 일이 조직단위로 커진 것 같은데,
카일은 이런 일이 있을 때 조에서 가장 선두에 내세우는 병력이다.
여기서 이러고 있어도 되나?
카일이 대답을 하기 전 잠깐 당신을 쳐다본다.
무슨 표정이지, 저게.
심리학 판정.
:저건..
대답을 생각하는 표정이다.

"내가 오겠다고 했어. 넌 이번 전쟁의 요주의 인물이지 않나."
"벌써 두 번이나 있었고, 어중간한 놈 데려다 앉혀놔서 또 무슨 일이 있을 지 모르니."

빠지고 싶었던 이유가 있으리라는 추측은 들지만 더 캐묻지는 않는다.
"내가 은퇴할 때가 되었나."
"네가 내 걱정을 해?"
눈알을 데록 데록 굴린다.

하늘이 무너지는 톤으로 탄성을 내지른다.
"이러기야?"
과장된 톤으로 팔을 휘두른다.
:날아갈 것 같다.

:소파를 팡팡 칠때마다 먼지가 인다.

딱히 그런 뜻으로 말한 건 아닌데.
보통 걱정하는 쪽은 나 아니었나? 기특해 한다.
"고생많았나보군?"

"나 고생 많았어."
"그러니까 너도 내 말 잘 들어."
"늦은 시간엔 나가서 돌아다니지 마." 아이에게 말하듯 말한다.
"밤에는 집에만 있어. 여긴 비가 자주 온단 말야."
"알겠나?"


그러나 이어진 말에 다시 입꼬리가 죽 내려간다.
"내가 어디 돌아다니기에 편한 상태는 아닌 거 같은데."

:검은 장갑을 낀 손이 당신을 향해 내밀어진다. 가죽이 반질댄다.

손잡고 일어선다.

정색하는 표정으로 투덜대는 얼굴을 빤히 보며 잡은 손 위에 올려주곤 주먹을 쥐어준다.

카일을 마주보며 생각해본다. 무엇일까?
:꼬깃꼬깃 뭉쳐진 종이다.
...
쓰레기?

"이게 뭐야?"
:손 안에 굴리면 소음이 까슬거리는 것이 얇은 포일같기도 하다. 사탕 포장지?


표정하나 안 바꾸고 뻔뻔히 말한다.

ㅇㅋ.
뭔가 확인해본다.
:포장지에는 그렇게 적혀있다.
:아, 이렇게까지?

사탕을 까서 입에 넣는다.
"알았어."

"배고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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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튜 골드맨
bonus / penalty
9
절뚝절뚝 걸어서 휴지갑을 집어서 카일의 얼굴을 향해 던졌다.
닿지 못하고 바닥에 떨어졌다.

휴지 한 장 뽑아서 옆에 올려둔다.
손을 슥슥 닦으며, "왜, 또."

"가져다 주려고."

속아준다.

잘 먹고 빨리 나아야겠다고 결심한다.

:말머리에서 머뭇거림이 느껴진다.
주문을 마치면 오늘의 셰프가 식사 준비 태세를 갖춘다. ...
냉장고를 여는 모습을 얼핏 보니 안이 가득 차 있다.

"야, 잠시만."
"너 음식할 줄 알아?"
의심이 담겨 있다.



:누구들은 안 그렇나.
관찰 판정.
:실패.
나이 차기도 전에 집 나와서 저 모양새겠지. 그나저나 즐거워보인다.
눈이 흐리고 잠시 어지러움을 느낀다. 뭐라도 좀 먹으면 나아질지 모르겠다.

카일이 음식하는 모습을 감시라도 해야겠다.



"환자는 가만히 앉아 있어." 소시지를 올려놓곤 한 켠에 계란을 까기 시작한다.
:관찰 판정.
:...식용유는?
계란 껍질 3개를 포착한다.

:흰자가 덜 녹은 냉동소시지에 늘러붙는다.
해동은?

...쳇.


빠르게 답한다.
"배 안 고파."

보지 않는게 낫겠다.
:외면하고 있으면 등 뒤에서 탄내가 슬 올라온다.
그 즈음 불이 꺼진다.


:접시 위에는 덜 익어 예쁜 분홍빛을 띄고 있는 소시지와 반면 까맣게 탄 부스러기를 흘리고 있는 토스트와 터진 노른자 위 계란 껍질들이 든 달걀 후라이가 보인다.
이래서 였을까.
내가 아직 회복하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겉은 뜨겁고 안은 차갑다.
"음식은 계속 네가 해준 거야?"

고맙다는 말?을 기대 중?
인 표정

'근데 어떻게 안 늘었지.'
토스트 위에 달걀 후라이도 얹어서 먹는다.
:입 안에 달걀 껍질이 까득까득 부서진다.

"과일도 깎아줘."
과일은 잘 깎겠지?

:카일은 이 쪽으로 등을 보인 채 무어라 궁시렁대며 삭삭삭삭 과일을 깎고 있다...

:삭삭삭대는 소리만 들린다.

:쾅!
...
파인애플이 쩍 갈라진다.

:곧 과일 플레이트가 서빙된다. 나쁘지 않게 깎인 사과와 키위, 파인애플이다.


"와!"
목소리를 높여서 반응한다.
"이거 그러니까, 과일이 여러종류네?"


"네가 깎은 거고..."

영혼 없이 대답하다가,
"..아!"
"아니, 됐어." 손짓하며 맞은 편에 앉는다.
"진심으로 입맛이 없어."
:역시 뭐라도 탔나?

파인애플을 한조각을 먹는다.
"살이 빠졌나?"

"그런 것 같아. 어쩔 수 없지. 교통 사고 당하고 바다에 빠졌다가 몇 주 입원하던 병원 창문 밖으로 몸이 탈출했는데 건장하면 이상하겠지."
:딴 소리를 한다.


진실을 말할 때가 되었나. 뭐 그런 표정이다.
"그래, 맞아."
"매튜."
"...나 다이어트 중이야."

빤히 쳐다본다.
소세지를 마저 깨물어 먹으며.
:풍부한 육?즙? 이 나온다. 누런색은 아니다.

:그 말을 듣고 나니 기분이 묘해진다.
문 밖에 선 카일의 인영을 보았을 때 느꼈던 위화감을 느낀다.
그렇다. 기억이 모호하지만...
어쩐지 카일을 제법 오랜만에 보는 것 같다.

고개를 갸웃한다.
"그 여자가 마른 남자를 좋아해?"
뱉고 나니 실례가 되는 발언이었던 것 같다.

"맞아, 결혼하려고."
:말하는 것이 난처한 듯 연신 얼굴을 매만지는 장갑 아래로 뵈는 손목이 뼈 밖에 안 남은 것 같다.

사레가 들려 기침이 나온다. 물을 마시며 겨우 진정한다.
"진짜야?"
그리곤 손사레를 휘휘 젓는다.
"내가 무슨 말을, 젠장. 축하해, 카일. 혹시 이것도 전에 나한테 말했었어?"

"그게, 내 말은..." 그러고는 갑작스레 이런 말을 한 것이 후회스럽다는 표정이 된다. "아, 아니야, 제기랄. 잊어버려."


웃는 투로, "뭘 잊어버리라는 거야."

굳은 표정으로 웃는다.
"다 먹었나?"
"날씨 좋을 때 산책이나 하지."

"넌 그냥 이 여기서 나가주는 게 좋겠어."



자리에서 일어난다.
빠르게 말하며 매튜에게 온다. "아냐, 아냐, 아냐. 뭘 설명해. 레오네는 지금 아주 바빠. 그리고 다른 불러올 사람도 없다고, 전쟁통이라."
"먹고 앉아만 있으면 더 피곤해져. 실내에만 있으니 답답하지 않나? 산책 나가자."
매튜의 손목을 잡는다.

"너 내가 무슨 말하는지 이해하고 있잖아."
타이르는 말투로, "가는 게 좋겠어."

"아니, 그런 거 아냐."
당혹스러운 표정이다. "뭘 이해한다는... 아, 오해야."
"오해야. 그리고 난 여기 있을 거야. 넌 기억도 없고, 몸도 성치 않은데, 날 보내고 너 혼자 여기서 뭐 어쩌겠다는..."
"...꺼져줄까?"

영 이해가 안간다는 표정으로. "결혼한다며?"
고개를 젓는다.
"일단 그렇게 해볼래?"
"꺼져봐."

"... ..."
"조금 있다 올게."
뒤돌아서 빠른 걸음으로 문으로 향한다.

:문을 열고 나가는 이의 어투와 몸짓 하나 하나에서 당혹감이 느껴진다. 내가 무슨 말을 했나?
그가 떠난 집은 아까보다 한 층 더 고요하다.
... 그러니까, 지나치게 아무 소리도 없다.
높은 천장 아래 고요와 적막이 저택을 감싼다.

:당연하게도, 없다.

:없다.
아마 카일이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어딘가... 담배가 있을 것이다.
집안을 둘러본다.
:관찰 판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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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
집안은 조용하고 심플합니다. 가구는 흰색 일색이며 최소한으로만 구비되어 있네요. 전반적으로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습니다. 안전가옥으로 쓰인 지 오래되었는 지, 사람이 살았던 흔적은 별로 느껴지지 않습니다. 일주일간 얌전하게, 깨끗이 쓰고 나가는게 좋겠어요.
HO. 집 공개

:진열장에는 먼지가 쌓인 인형들, 각종 보드게임 및 장난감들이나 책 따위가 놓여 있습니다.
인형과 책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
술도 있습니다. 넵

"안전가옥에 별걸 다 갖다 뒀네."
:남이 쓰던 집을 그대로 사고 정리하지 않은 것일까요? 뜬금 없는 소품들입니다.
인형은 한 손에 들어오는, 사람 모양의 작고 통통한 목각 인형입니다. 새 모양의 가면을 쓰고 있네요.

책은 뭔가?
:대충 살펴볼까요. 삽화가 페이지마다 실린 아기돼지 삼형제 동화책, 그리스 로마 신화에 관한 책, 개정판 프랑켄슈타인 소설 등이 있습니다.
관찰 판정.
:성공.
그리스 로마 신화에는 돼지 꼬리 모양의 책갈피가 꽂혀 있네요.

책을 집어 책갈피가 꽂힌 부분을 펼쳐본다.
:페이지를 열어보면 피그말리온이라는 이름이 눈에 바로 들어옵니다.
피그말리온은 키프로스라는 나라의 조각가였으며... 상아로 만든 조각상에 갈라테이아라는 이름을 붙이고 연인처럼 여겼다고 합니다.
여신 아프로디테의 힘을 통해 조각상이 인간이 되었고 둘은 결혼에까지 이르렀다고 하네요.

심란해져서 책을 덮는다.
한 손에는 인형을, 다른 손에는 술병을 집어들고 식탁으로 향한다.
:식탁에는 식사를 다 한 뒤 치우지 않은 식기들이 여전히 남아있습니다.
식탁 끄트머리에는 알약이 든 약통 몇 개가 놓여 있습니다.
용기에 소분해둔 듯 무슨 약인 지는 알 수가 없네요.

없어도 된다고 위안하며 약을 옆으로 밀어둔다.
물컵을 비우고 그 잔에 술을 따른다.
가져온 인형도 옆에 내려놓고, 먹다 남은 음식과 과일을 안주삼아 술을 마신다.
:잔을 몇 번 들이키면 허약해진 몸에 술이 매우 빨리 드는 느낌입니다.
중심이 서지 않아 흐느적하게 앉아있는 인형을 옆에 둔 채 몇 잔을 따르다보면, 집 밖에서 인기척이 들립니다.
흘긋 보면 반투명한 유리창 너머로 카일의 인영이 보입니다.

"대낮부터?"
"나는 떼어놓고?"

"그럼 너를 데리고 마실까?"

자리로 다가와 옆에 앉는다.
"매튜, 날씨가 좋던데."
입꼬리가 올라간다.
"나가서 좀 걷자. 응?" 구슬리듯 말한다.
:관찰 판정.
:끌어올리는 입꼬리가 경련하는 것이 보인다.

"가자, 가."
일어선다.
:밖으로 나서는 길은 카일이 앞장을 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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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이 열리면 햇살이 얼굴로 바로 쏟아지고 적당히 미지근한 바람이 살에 닿는다.
눈을 뜬 이후부터 가졌던 모든 의문이나 불안이 갑자기 사르륵 녹는 기분이다.
미심쩍은 이 모든 상황이 완전히 정리되었다는 뜻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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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몸에 닿는 햇살이, 몸을 부드럽게 감싸는 공기가, 눈 앞의 당신이 마음에 위안이 된다.
몸의 에너지가 차오르는 기분이다.
말 그대로다.

"날씨 좋지?"
:그의 얼굴도 집에서 보았을 때보다 덩달아 생기가 있어 뵌다.
새로운 공기에 익숙해지는 중인 당신에게 그가 묻는다.

인정한다. "그러네."
"여기가 대체 어디에 있는 곳이야?"


뒷말이 이어지길 기다린다.


"섬이라고?"

"안 쓰는 부동산을 유지하기엔 적절한 곳이고. 공기 좋지?"

필요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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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아, 네 몸 상태에 무리가 안 가는 선에서는 가장 먼 곳이야."
"적어도 도시는 벗어나야 했어."

애초에 왜 따라온거야?
"이해했어."
:이 쯤 되면 정말 자신이 요양을 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 지 싶어진다.
등 뒤로 우리가 나온 저택이 보인다.
관찰 판정.
:방금 막 나온 곳은 하얀 색의 저택이다. 하얀 색이라니, 관리가 쉽지 않겠다. 새 건물인지 아주 깨끗한 느낌이다. 문 옆에는 회색의 문패가 붙어 있다.


:피그말리온의 집이라고 쓰여있네요.
전 주인 이름일 리는 없고.
가게였을까?

명패를 두드리며 묻는다. "원래 누가 살던 곳이었나?"


그러다가 마침 잊었던 것이 떠올랐다.
"담배 네가 갖고 있나?"

"하고 싶나?"


담배를 꺼낸다.
갑에서 한 개비를 꺼내, 매튜에게 건네다, 손을 도로 뺀다.
"내 말 듣겠다고 말하면 줄게."
"밤에는 안 나간다. 낮에도 멀리 안 나간다."


뻗은 손을 물리고 뒤돌아서 먼저 집안으로 향한다.

쫓아온다.
매튜의 손목을 잡곤 담배를 쥐어준다.



퍽 아쉬운 눈길로 담배를 바라보다가 앞주머니를 두드리며 말한다.
"글쎄다."
집에 들어가고 싶다.

손가락으로 숲 속 끝을 가리킨다.
"바다 있어."
"보러가지 않겠나?"
"나오니까 기분 좋아졌잖아."


바다를 보러갈지 말지가 아니라 다른 여러가지를 고민한다.
"그래. 가자."
숲 속에선 오후의 햇빛이 나뭇잎에 가려진다. 그럼에도 이 곳은 따뜻하다.
듣기 판정.
:성공.
아까 집에서 새 소리가 들렸었지. 귀를 기울여보지만 이 곳에선 들리지 않는다.
바람하나 불지 않는 숲이 고요하고 조용하다.
요양하기에 좋은 조건을 갖춘 것 같아.
하지만.. 부자연스러운 고요함에 괜한 섬짓함이 느껴진다.
그것도 잠시, 숲을 빠져나올 즈음 카일이 당신을 향해 손을 내민다.
:장갑 낀 손을 향해 시선이 내려간다.
귓가로 시원한 바람이 스친다.



:손이 까졌다고 장갑을 끼나. 어딘가 찜찜한 구석이 있지만 거짓말을 하는 표정은 또 아니다.
거짓말 할 게 뭐 있겠나 싶기도 하고.

"다쳤으면 약을 바르던가 해야지."
손을 잡고 장갑을 벗기려한다.

"약도 바르고 붕대도 감았어. 물이든 어디든 닿는 게 번거로워서 꼈을 뿐이야."

뭐... 오지랖인가?
"잘했네."
"어느 쪽이라고?" 가는 길을 살피는 체하며 마저 걷는다.

매튜가 걷는 곳으로 고개를 향하며, "거기야."
:잠시간을 좀 더 걷다보면, 우거진 나무 사이로 하얀 모래사장과 푸른 바다가 보인다.
신발 아래 부드러운 모래가 밟힌다.
바닷바람이 살갗을 간지럽힌다. 따뜻한 오후 햇살이 부드러운 금빛으로 바다를 덮고, 찰랑이는 파도가 보석처럼 반짝인다.

:기분전환이 될거라더니 정말이다.
햇살 아래 반짝이는 수평선을 바라보며 숨을 깊이 들이마시면 바닷바람에 실려 오는 짭조름한 향이 폐를 가득 채운다.

:곁으로 뒤늦게 발소리가 다가온다. 구둣 발자국이 고운 모래 위에 흔적을 남긴다.

담배를 입에 물곤 불을 붙인다.

"그게 그렇게 중요해? 내가 밖에 안 나가는 거?"




"담배는 됐고."
"나한테 키스하면 약속해줄게. 여기서 지내는 동안 네 말 듣기로."

"내가 네게 키스하는데 조건이 필요한 적이 있었나?"
한 발자국 다가와 어깨에 손을 얹고 턱을 기울인다.
:박하향이 난다.
이거 또, 멘솔이군.

"미쳤군."
고개를 흔든다. 손에 들려있는 담배만 뺏어간다.


뺨이 홀쭉해질 때까지 담배를 빨아들인다.

"나는 네가 던지면 무는 쪽이고."
"항상 그렇지." 모래를 찬다.
:햇살을 받은 금싸라기가 파도 거품에 흩뿌려진다.

:서로의 얼굴을 대신 바다를 보고 선다. 깊은 박하향이 폐를 채운다. 파도가 끊임 없이 밀려들어온다.
관찰 판정.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그거 마지막이었어."

니코틴이 돌아서 그런지 바닷바람에 술기운이 깨서 그런지 머리가 맑아진다.
"그래서... 언젠데?"

"이거 돛댄데, 하고 아끼고 싶어질 수도 있잖아."
"... 그냥 피면 되는 걸." 약간 투덜대듯 말한다.
"두 달 뒤야."

:이렇게 갑작스레?
그러고보면 카일은, 당신이 사고를 당하기 전에도 꽤 안 보였던 것 같다.
그러니까 이렇게 오랜만인 기분이지.
어디갔나 했더니 착실히 사업을 하고 다녔나보다.


이마를 문지르며 매튜를 향해 손을 휘휘 젓는다.
"돌아갈까?"

꽁초가 된 담배를 바닷가를 향해 집어던진다.
"너 그런 식으로 구는 거, 내 자존심이 아주 산산히 부숴지는 기분이야."
얼굴이 조금 붉어진다.


"축하는 하게 해줘야 할 거 아냐."
"네 친구나 가족으로?"


두어번 눈을 깜빡인다.
카일의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 아까부터 스스로도 모른 척하고 있었지만 사실 이쪽도 이런 식으로 굴 자격이 없다.
"그래. 돌아가자."

"진짜야, 매튜?"

"그리고 카일, 내가 그거 말곤 할 수 있는 게 없어보이는데."
"나는 너한테 꺼져달라는 부탁도 해봤고, 그래 뭐, 네 표현을 빌리자면 미끼도 던져봤지."
"그러니까, 음. 그래. 이제 네 말이 맞아."

"나한테 더 할 말은 없고?"

웃는다.
"축하해?"

"돌아가자."

"나한테도 시간을 좀 줘. 너도 남자니까 알잖아."
"살 부대낀 사람이 갑자기..." 한숨을 쉰다. "안된다고 하면 어렵단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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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
:짧은 답을 뒤로하고 돌아가는 숲 위로 먹구름이 슬 낀다.
저택으로 돌아오면 어둑해진 바깥을 비추던 창에 물방울이 맺히기 시작한다.
이윽고, 비가 쏟아지기 시작한다.
... 어디서 아주 정확한 일기예보라도 보고 온 것일까.

비가 자주 온다더니 정말 그런가보다.
:창가로 다가가보면 바깥이 새까매져있다. 후두둑 창을 때리는 빗줄기와 회색으로 물든 먹구름 때문에 아까의 그 하늘이 맞나 싶을 정도로 우중충하다.
고요하던 저택에 빗소리가 사방을 채우자, 그래도 나름 운치라는 게 생기는 것 같다.
시간이 간다. 저녁 식사를 하고 씻고 나면 카일은 또 혼자 기분이 풀린 것 같아 뵌다.

기운을 차려서 다행이다.

그대로 침실로 가다간 살짝 열려 있는 장을 본다.
병을 든 채 허리를 숙이고 장 안을 들여다본다.
"... 흠."
"게임할래, 매튜?"


뭐 머리 안 쓰는 거 없나.
1
"이거 하자." 젠가를 꺼낸다.

바닥에 앉는다. "갖고 와."
:젠가는 바닥에서 해야 제 맛이지.

잔에 술을 따른다.
:젠가는 취한 채로 해야 제 맛이지.



진짜로 핸디캡을 주면 용서하지; 않겠다.
"흐음..."
매튜를 떠보듯 보며 흥얼댄다.
"없어. 그런 게 어딨나. 지면 지는 거지."

:카일 또한 잔을 비운다. 역시 가성비 좋은 몸이 되었다 싶다.
어라, 그러고보니.


:눈을 뜬 이후로 입에 뭔갈 넣는 모습을 처음 본 것 같다.

이긴 사람이 나중에 빼기.
1: 가위 2: 바위 3: 보




:This message has been hidden.
젠가의 규칙 : GM은 1D15를 굴립니다. 두 사람 또한 1D15를 굴립니다. 이미 나온 숫자가 나오면 재굴림 합니다. 처음 GM이 굴린 숫자와 같은 숫자가 나온 사람이 탑을 무너뜨립니다.
함정 숫자 : 13

9

옆에서 입으로 후후 바람을 불고 있었다.
"내 차례지?" 엎드려서 젠가 탑 옆구리에 있는 막대를 꺼낸다.
6

4

아래에서 두번째 층 가운데 막대를 손으로 슬슬 밀어서 빼낸다. 13
:와르르!

"어!"
:탑이 무너진다.....


"한 판 더해."

:뽑아낸 막대에 쓰여있는 글씨는...

확인하고 젠가를 젠가 무덤에 섞는다.
확인하기 전에 뒤섞는다.
정색하고 팔을 걷어부치기 시작한다.


"그럼 옆구리 말고 발로 할까?"


1: ㅇㅇ 2: ㄴㄴ
2



"나 간지럼 안 타!"


간지러워!

:손끝이 살짝 스치기만 해도 몸이 바짝 웅크려진다. 온몸이 완전히 방어적인 자세가 되어도 손이 멈추지 않는다. 그만! 빠져나가야만 해!!
몸부림친다. 근력 대항 판정한다.


매튜 골드맨
bonus / penalty
4
아예 깔고 누워 체적으로 누르며 죽기 살기로 간지럽힌다.
"울어, 울라고!"
"아직 참을만한 가 보네?" 골반으로 손을 가져간다.

"악!"
"잘못했어! 항복!"
끄으으윽, 하며 반쯤 흐느낀다. 흑흑...
:그제야 손이 멈춘다. 꽉 다문 눈을 흘깃 떠보면 이 쪽을 내려다 보는 카일의 벌개진 얼굴이 흥분이 어려있다.

:움직임을 멈추자 온 몸 여기저기가 쑤신다. 몸부림친 탓에 발목이 .. 발목이 아프다.

:당해버렸다..


흠흠, 헛기침한다.
"난 벌칙을 수행할 의무가 있었어. 울 때까지 괴롭히라고 했잖나."
:얼굴에 든 홍조나 끄고 말하시지 싶다.

서둘러 젠가를 다시 쌓는다.
"한 판 더 해."

:스진을 위해 1D10으로 갑니다. 8

거의 맨 위에 있는 바를 꺼냅니다. ㅋㅋ

:.. 방금 약간 흔들린 것 같은데.

사실 심장이 멈출 뻔했다.
휴...

4

:아, 위험했다.
여기는 흔들린다..

다시... 4
정신차려!
젠가: 흔들흔들...

아무래도 이번 판은 이길 것 같다.
턱을 괴고 카일 차례를 지켜본다.

무너져라! 죽어라! 쓰러져라! 뭐라도 쳐라!
이러고 있겠지.
냅다 뽑는다. 3
으......
으으.......!



후.
다시 승리의 미소가 돌아온다...
턱을 괴고 매튜를 지켜본다.

사방을 둘러보며 무게중심? 같은 걸 추측해본다.
제발! 3
아니야!

~♬

8
아?

"아!" 박수친다.
:와르르.

속절없이 쓰러지는 젠가 탑을 바라본다.
:붙잡는 순간 퉁.. 조각들이 튕겨 나간다.

:손에 들린 막대가 가리키는 글자는..

젠가에 적힌 내용을 확인했다.
주먹에 꽉 쥐고
침실로 뛰어간다.
도망친다.

침실로 쫓아 달려간다.
:문을 벌컥 열고 들어간다.
죽기살기로 쫓아오는 발소리가 바로 등 뒤에 들린다. 이 때만큼 카일이 무서웠던 적이 있을까.

카일이 오기 전에 이 젠가를 침대 아래에 던져 넣어서 숨기려 한다.
좋은 생각이지 않나?
:민첩과 관찰력 대항 판정.
아.
창밖에 던질걸...

뛰어오던 그대로 납작 엎드려 침대 밑으로 슬라이딩해 기어들어간다.
:발목을 잡을 수 있다.

:아니면 그냥 포기하거나.

뭐랄까, 압도당했다.
"안 다쳤어?" 침대 밑을 확인한다.

그대로 침대 밑에서 젠가를 확인하고,
"오케이!" 승리의 탄성을 내지르다가 머리를 침대에 쾅 부딪힌다.
:침대 아래서 가냘픈 신음소리가 들려온다...

뒤에서 발목을 잡아 카일을 꺼낸다.
:카일이 질질 끌려나온다. 머리를 잡고 있긴 하지만, 반대 쪽에는 젠가 막대도 쥐고 있다.





"그래. 소원있어?"


"곤란한데."



"너랑 하고 싶으니까."
:마치 이런 것을 묻는 당신을 이상한 사람 취급하는 듯한 말투다.



짧은 시간 동안 깊이 생각했다.
옆에 앉아서 카일의 몸통을 다리로 감는다.
"제정신이야?"
궁금해서 묻는다.

"난 제 정신이었던 적이 살면서, 한 번도, 없었어."
"너도 알고서 날 좋아한다고 생각했는데."
"아닌가?" 떠보듯이 묻는다.

카일 턱을 꽉 쥔다.
"살면서 지금처럼 망설인 적도 없는 것 같은데."
반쯤 짜증낸다. "나 이런 거 적성에 안 맞아."
:창 밖을 두드리는 빗소리가 심해진다. 어느새 멀리서 작은 천둥 소리도 간간히 울려퍼진다.


놓는다. "다른 소원은 없어?"

매튜를 향해 상체가 기운다. 상대의 골반 옆에 둔 손이 제 심장소리에 맞춰 톡톡톡 시트를 두드린다.
불만스런 표정이다.
손바닥 아래 빠르게 두근대던 박동이 차츰 잦아들 즘, 매튜의 손을 탁 놓는다.
:바깥에서 천둥 소리가 한번 울린다. 밤 내내 비가 올 모양인 가 보다.

"먼저 자."

"잘자, 카일."

:뒤통수가 고개를 끄덕이며 나간다. 문이 닫히면 어쩐지 온 몸에 힘이 다 빠지는 기분이다.

:침대에 누우면 얼마 있지 않아 빗소리가 아득하게 멀어진다.
잠들 때 까지도 샤워를 하거나 하는 소리는 딱히 들리지 않는다.
대신에, 문이 열리고 닫히는 소리를 마지막으로 의식이 까맣게 멀어진다.
...
어느 순간, 속삭임이 스멀스멀 머리 속을 찾아온다.
:한 없이 반복되는 소곤거림은... 내 것도 아닌, 그의 것도 아닌, 다른 누군가의 목소리로 이루어져 있다.
... 아니, 그게 맞는 지도 가늠이 잘 되지 않는다.
여러 목소리들이 머리 속에 번진다.
:그러나 메세지만큼은 또렷하다.
:몇 겹으로 겹쳐 들리는, 그러나 깨끗하게 전달되는 소리.
낮고 높은 소리가 연이어 흘러가다 하나로 조금씩 합쳐진다.
마지막에 들린 것은 짧은, 그러나 잊을 수 없는 문장이다.


:This message has been hidd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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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서 들리는 새소리에 눈이 뜨인다.
두번 째 날이 밝았다. 눈을 떠보면 혼자다.

누워서 소리친다.
"카일!"
환자니까...
:This message has been hidden.
불러도 대답이 없다. ...
손목과 발목에 시큰거림이 느껴진다.
어제보다는 나아진 것 같긴 한데...
그리고, 기분 탓일까?
몸이 약간 가벼워졌다.
:'요양'의 효과가 슬슬 나타는 모양이다.

빨리 나았으면 좋겠다.
침대를 빠져나온다.
:요양보호사가 불러도 안 온다.
침실을 빠져나오면 소파에 자고 있는 카일이 보인다.

뭐 던질 거 없나 주위를 둘러본다.
:어제 플레이했던 젠가가 바닥에 여전히 널부러져있다.
치우지 않은 술병과 술잔도..

베개를 들고...
자고 있는 카일의 얼굴에 누른다.
:카일은 팔짱을 낀 채 소파에 구겨져 있다. 베개를 가져가면 눈살을 찌푸리며 얼굴을 가린다.
눈가가 퍼렇다. 왜인진 모르겠다.
아직 잠에 깊이 빠져있는 것 같은데.. 굳이 지금 깨울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잠시 집을 둘러보아도 괜찮을 것이다.

해치웠나?
했다가, 얼굴 상태를 보고 놀란다.
너무 세게 눌렀나?

베개를 카일 몸 위에 올려놓는다.
:카일은 배 위의 베개를 껴안고 잔다.



:테이블 위에는 먼지만 쌓여 있다.
소파 위에는 카일이 잠들어 있다. 잘 때도 여전히 저 놈의 장갑을 끼고 있다.

구두끈을 풀고 뒷축을 잡아 당긴다.
:구두가 쑤욱 빠진다.
맨발이 나온다..
양말을 안 신었어?!
구두를 보면 발목 양말이 같이 들어있다.
발목이 헐렁해졌나 보다.

:'카일의 구두'를 획득했다.
'카일'은 맨발로 자고 있다..

베개위에 얹어진 손에 슬그머니 접근한다.
:<은밀하게> 해보자.

:어려움 성공.



손목에 걸린 장갑의 목부분을 잡고 살살 벗겨낸다.
해치웠나?
:'장갑'을 벗겨내었다. 카일은 깨지 않는다.
한 손이 드러난다.
손가락 곳곳에 굵은 상처가 나 있다.

상처를 살펴본다.
:어려움 성공.
날카로운 무언가에 베인 듯한 자상이다. 두어개 정도의 작은 상처들은 딱지가 아직 앉지 않았다.


불편한 듯 뒤척인다.
미간에 주름이 잡힌다.

"개새끼..."

"으... ."
이가 천천히 잘게 부딪히기 시작한다. 탁탁탁탁탁...

멀리한다.


:'장갑'은 이제 땅에 있다.

:내부를 마저 확인할 수 있다.

바닥에 쌓인 젠가를 발로 밀어서 치운다.
어항은 무엇인가?
:젠가가 달그락대며 쏟아진다..
'어항'에는 물이 채워져 있으나 물고기는 없다. 뭘 기르려고 준비라도 해 놓은 모양이다.

퐁당!
:'카일의 신발'은 이제 모형 불가사리와 함께 바닥에 가라앉았다.

기뻐졌다가 자괴감을 느낀다.
다시 건져낸다.
:구두에서 물이 뚝, 뚝, 떨어진다...
안에 든 양말도 푹 젖었다.
물 비린내가 난다.

어른스럽지 못한 태도를 보이고 있음에 대하여...
그래... 음.
신발은 양말을 빼서 창가에 대충 올려놓는다.
욕실로 향한다.
욕실이 어디지?

:다용도실에는 청소도구 몇가지와 공구함이 있다. 살짝 열린 공구함에는 '망치'와 '스패너'등 다양한 공구들이 들어있다... 챙길 수 있다.
무언가를 고칠 일이 있을까?

기억해두고 다용도실을 닫는다.
옆의 문을 연다. 욕실을 찾았다.
:'빠루'도 있다. 참고하자.

:욕실에는 커다란 욕조가 있다. 물기가 약간 고여있다. 관찰 판정.
:실패. 이렇다할 특이점은 보이지 않는다.

수전을 틀어 욕조에 따듯한 물을 받는다.
:마개를 닫고 물을 받는다. 욕조에 따뜻한 물이 차오른다...

지금 입고 있는 옷을 의심스럽게 내려다본다.
침실에서 옷장을 본 것 같은데.
침실로 돌아가 옷장을 열어본다.
:물은 끄고 가나?

:수도세는 당신이 내는 것이 아니다. 침실로 간다.
옷장 안에는 옷 몇 벌이 걸려있다. 정장들과 목욕 가운, 잠옷, 생활복 따위. 그런데 뭐랄까.
여자 옷이 섞여 있다.
이질적이어 눈에 띈다.

:쏴아아아아...
물이 새는 소리가 들린다.

생활복을 집어들고 욕실을 향해 뛰어가려다가
그냥 걸어간다.

그렇지?
욕실 선반에 옷을 올려두고 수도를 잠근다.
:욕조에서 물이 넘쳐 바닥까지 찰랑댄다.
배수구에 머리카락이 둥둥 떠다닌다.
갈색 머리카락과 길고 검은 머리카락들...
다양하다.

옷을 벗고 욕조 안으로 들어간다.
사람이 들어가니 물이 한차례 넘쳐흐른다. 머리끝까지 물아래에 잠수했다가 다시 올라온다.
:부피만큼 물이 빠져나간다.
따뜻하다.

:물이 문틈으로 새어나간다.
욕실 전체가 욕조가 된 것만 같다.
욕조 밖에서 물놀이를 해도 되겠다.

후회한다.
뜨거운 물로 세수도 한다.
좋다!
:김이 올라온다.. 얼굴이 벌개진다.

너무 오래 있었다...
반쯤 삶아졌을 때쯤 잠에서 깬다.
:깬다.
왜?
문을 잠갔나?

안 잠갔나?
잠가야했나?
:안 잠갔겠지.
왜냐하면,
문을 열고 당신을 내려다보고 있다.

:그의 발 아래 문 밖으로 물이 찰팍인다.


구두며 양말이며 벗겨진 맨발을 가로 두어 바깥으로 샌 물을 찰박찰박 욕실 안으로 밀어낸다.
그리곤 다시 서서 매튜를 내려다본다.

"미안."
그러니까 맨발이랑 물 넘친 거 둘다.
굳이 설명하진 않는다.


벗기고 싶어서. 불만있나?

이어 묻는다.
"장갑은 왜 벗겼어?"

"좀 나가, 좀!"

웃는다.
상황을 즐기고 있다.
"그렇게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될 걸."


"아까 해치웠어야 했는데."
:밖에서 카일이 소리지른다.
"매튜! 빨리 나와! 수도세 많이 나오면 말야. 내가 레오네한테 혼난다고!"

:"뭐 먹을 거야, 그리고!"

수전을 옆으로 꺾어 찬물을 튼다.
"아무거나!"
두피까지 빡빡 씻는다.
벅벅벅벅...
잘 씻고 새옷으로 갈아입고 욕조를 나온다.

맨바닥에 물기가 아직도 남아있다.
바깥으로 나오면 향긋한..
레토르트 미트볼의 냄새가 난다.
우유에 담긴 시리얼도 식탁 위에 준비되어 있다.
다 불어 있다.
:This message has been hidden.
어째서 우유를 미리 부어놓은 것일까.

"카일, 시리얼..."
의미가 있나?
"됐다."

"너야."
:우유를 잔뜩 머금고 불은 시리얼들이 둥둥 떠다닌다.
교훈을 주고 싶었던 걸까?
먹을 걸로 장난치면...

"그럼 저건 너야?"
봉투 안에 든 바짝 마른 시리얼을 가리킨다.

"바삭하고, 알록달록하고, 예쁘지."
후루츠링이었다.

방금 발언에 대해 순수하게 감탄한다.

어제처럼 턱을 괸다.
물에 불은 매튜가 불은 시리얼을 먹는 것을 감상한다.

:멀리서 웃음 소리가 들린다.

"잘 먹을게."
숟가락을 떴다가 웃음소리에 고개를 든다.
:바깥에 누군가 있나?
그 소리를 듣고보니 떠오르는 것이 있다.
어제 해변은 텅 비어있었지.
아름다운 해변임에도 사람 하나 없었다.

다시 시리얼을 먹으며, "그래도 무인도는 아니었나보네."

:식탁에 앉아 마주 본 얼굴이 퀭하다.
해골과 대화하는 것 같다.

"어제 햇살을 쬐니까 좋았잖아. 그렇지."

일어나서 빈 그릇에 시리얼을 담아서 우유통과 함께 들고온다.

시리얼을 슬쩍 내려다보며 미소짓는다.
숟가락을 든다.
"부어줘."


꿀꺽꿀꺽.. 목울대가 울렁인다.
내려놓고 숟가락으로 알록달록한 후루츠링을 마저 퍼먹는다.
빠른 속도로 퍼먹는다.


입 안에 가득 우겨넣은 채 쿨럭인다.
사레 들렸다.


입 안에 녹은 시리얼들을 전부 넘기고,
2
"...후."
숨을 몰아 내쉰다.
"좋아, 매튜."



:이해가 잘 가지 않는다.

좋아하는 건가?
"더 먹을래?"

"배 불러."
"이제 나갈까."

"너 신발 없잖아."
미트볼을 입에 넣는다.

"왜 없지?"

"미트볼 맛있네."
"어떻게 한거야?"
말 돌린다.

"미트볼 잘 하지?"

완제품의 맛이 좋다.
미트볼을 마저 먹는다.

:피곤해보이긴 하나 당장에 콧노래가 나올만큼 기분은 좋아보인다.


"약이 다 떨어졌어."
:이제보니 다크서클인 것 같다.

"그거 괜찮은 거 맞아?"




불길해한다.

"내가 너 좋단 말한 적이 한 두번이라고."
"잘생겼다는 말은 한 적 없나?"
왜 이러는 거지.


"내가 굳이 네게 잘생겼다고 말하지 않아도,"
"너는 내가 널 잘생겼다고 생각한다는 사실을 알 거고,"
"무엇보다도 네 행동과 표정 하나하나가 그렇게 말하고 있으니."
" '자! 잘생긴 내 얼굴을 봐!' "
" '내 미소를 보라고. 못 참겠지?' "

" '하지만 난 모르는 척 할 거야.' "


일어나서 맨발로 거의 춤을 추듯 빙글 돌아오며 말한다.
"언제 다 먹나?"
정색하며 말한다.

아무말도 못하고
그냥 얼빠진 채로 듣고 있다가
뭔가 항의하려고 하면 다음챕터로 넘어간다.
항상 이렇지..
"다 먹었어."


손을 잡는다.
:젖은 맨발이 찰팍이는 소리가 문 밖으로까지 이어진다.

:문을 열고 나오면 어제와 같이 즉각 기분이 업 된다.
온화한 공기가 온 몸을 감싸고 부드럽고 포근한 흙이 밟힌다.
기분 나쁘다면 어쩔 수 없고.

아마도...
:그렇다. 이 상황에서 찝찝한 것은 눈 앞의 저 자 밖에 없다.
달콤한 냄새가 공기에 섞여든 것 같기도 하다.

:카일은 조금 미쳐버린 것만 같다.

:높은 확률로 그럴 것이다.
카일이 금단 증상을 겪는 모습은 본 적이 없다.
그는 항시 약을 소지하고 다닌다.
필요할 땐 섭취한다.
지금은 아니다.
회색빛 구름 대신 맑은 구름이 하늘을 메우고 있다.
:참고하자.

빙글 빙글 산만하게 뛰어다니는 카일에게 목줄이라도 채워놓고 싶다.
발 다칠 것 같은데, 그런 거 신경 쓸 정신도 없으리라 판단한다.
:맨발바닥에 흙과 젖은 나뭇잎이 붙는다.
간 밤에는 정말 비가 왔었지. 그의 말대로.

:늘 그렇듯, 그렇다.
큰일이다.
정말 큰일이야...
그런 생각을 하며 따라갈 즈음 ... 멀리 나뭇가지 사이로 해변이 보인다.
그리고 해변가에는.. 사람들이 간간히 서 있다.

사람들이 있다!
카일을 붙잡는다.


"따라가기 힘든데."

양 손바닥을 관자놀이 언저리에 들고 흔든다.
"드디어 나에게 관심을 주는 구나, 매튜!"

이상한데?
"어디서부터 따져야할지 모르겠어."
"어차피 너 지금 말이 안 통하는 상태지?"

"그래, 맞아, 매튜."
"어제 밤에 결심했어. 나는 미쳤고, 말이 안 통하는 콘셉트로 가기로 했어."
"왜냐하면 내가 이성적으로 굴려 해봤자 너와 분위기만 안 좋아지거든."
"아!" 당신의 입 앞에 손가락을 둔다.
"네 탓 하는 게 아냐. 내가 이성적으로 굴었다고? 그런 적이 없었지. 하려했다 는 뜻이야. 말 그대로."

"그런 생각하고 있었어?"
"잘됐네."
"나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눈을 가늘게 뜨고 본다.
"이제야 말이 통하는군!"
"신기하지! 대화를 하려하면 안되고 둘 다 말이 안 통하는 콘셉으로 가겠다 결심하니 말이 통한다니 말야!"
매튜의 손목을 낚아챈다.
"말이 안 통하면 뭐 어때!"
손을 가져다 있는 힘껏 자신의 뺨을 때린다.
:저항하려면 근력 대항 판정..


" 이렇게, 얼굴도 좀 치고, 얼마나 좋아! "

해골같고 다크서클은 시커멓고 뺨은 빨갛고
못 볼 꼴이다.
뺨을 양손으로 잡고 입을 맞춘다.
"네 총각파티라고 생각하지, 뭐."
고개를 절레 절레 젓는다.


부탁한다..


"............"
:아무 것도 묻지 않고..
관찰 판정.
:펌블.

:너만 충격이야?
이성 -1.

:글쎄, 뭘까. 뭔가 이상한데. 뭔가...
하지만 카일의 돌발행동에 충분히 distracted 됐다.
한국어가 기억 안난다...


신경질적이고 예민하게 반응한다.

바다로 걸어들어간다...

붙잡는다.

양 손으로 얼굴을 가리곤 발목보다 살짝 위로 찬 그 자리에서 쪼그려 앉는다.
"... ..."
그 상태로 가만히 있다가...
바닷물을 퍼다 찬물 세수를 한다.

신발안으로 물이 들어온다.

"안아 줘, 매튜... ... ."
"나 너무 힘들어... ." 덧붙인다.

손바닥으로 카일 팔뚝을 문지른다.
:바닷물이 차갑다.

:따뜻한 온수속 취침으로 돌아왔던 온기를 다시 빼앗기는 것 같다.

:그러니까, 그제서야 그 기시감을 눈치챈다.
당신은 쪽이 팔리지 않는다.
다 큰 남정네들끼리 바다에서 뺨을 때리고, 입을 맞추고, 바다로 들어가 쪼그려앉은 채 안아주고 있어도.
왜냐하면,
다 큰 남정네들끼리 바다에서 뺨을 때리고, 입을 맞추고, 바다로 들어가 쪼그려앉은 채 안아주고 있는데,
:...왜 이렇게 조용할까.
사람들이 있는데, 아무도 대화를 하고 있지 않다.
그들은 그저 해변을 방황할 뿐이다.
가까운 사람이든, 멀리에 있는 사람이든...
움직이는 속도도, 패턴도 똑같다.
어딘가를 향해 걷는다기보다 그저 '걷는' 행위만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일단 카일을 떼어낸다.

떼어내기 전에..

"카일."



매튜를 보며 고개를 끄덕인다.
:다소 멍한 표정이다. 진정한 듯 하다.

멀리서 보이는 사람들을 향해 시선이 돌아간다. "마저 걸을까?"

:일어나면 바지와 자켓 끝단에서 물이 뚝뚝 떨어진다.

카일도 이변을 눈치채진 않았는지 살핀다.
:손이 슬쩍슬쩍 스친다.
심리학 판정.
:그의 눈에는 어떤 조급함이 서려있다.
이변을 눈치챈 것을 넘어, 당신이 그것을 눈치채지 않길 바라는 눈치다.
맞은 편에서 한 남자가 걸어온다.
당신을 보고 있지는 않다. 그도 마찬가지로 목적 없이 어딘가로 가고 있을 뿐이다.

당신을 제 쪽으로 끌어당긴다.

카일을 본다.
"대체 뭐야?"

:남자가 옆을 지나가는 순간,
카일이 답하고, 그 목소리에 남자가 이 쪽을 본다.
남자의 눈이 카일을 향해 고정되고, 그 순간 두 눈과 입이 크게 뜨인다.
짐승과도 같은 괴성이 그 입에서 나온다.
남자는 느닷 없이 쿵, 쿵, 모래를 튀기며 뛰기 시작한다.
어설프기 짝이 없는 모양새로 뛰던 그는 자기 발에 걸려 넘어지더니, 갑자기 모래에 코를 처박고 킁킁거린다.
:바닥에 등을 대고 몸을 비비기도 하면서.

:SanC 0/1

:성공.
문득 돌아본 카일의 얼굴이 백짓장처럼 하얗다.


온 방향으로 도망친다.
:숲을 향해 달리는 두 사람에게 해변의 사람들은 무관심하다.
단숨에 달려오면 그 새 머리 위로 먹구름이 하얗게 끼기 시작한다.
등 뒤로 저택의 문을 쾅, 닿자마자 몸이 급격히 노곤해진다.
피곤한 것은 당신 뿐만이 아닌 것 같다.
소파나 침대에 늘어져 쉬는 것도 좋겠다.



:몇 분 간 시간이 지나고나면, 창 밖으로 빗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혼란스럽다.
:재킷의 끝단도 내일이면 하얗게 번질것 같다.
하늘은 언제 맑았냐는 듯 꺼멓게 물들어 있다.

"차 타줄게."
"잠 잘 오게."
:물이 보글보글 끓는 소리가 들린다.

물 끓는 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말한다.

한 스푼..
두 스푼..
세 스푼..
네 스푼..
...

매튜에게 차를 가져온다.
:캐모마일 티에 우유와 설탕이 들어갔다.
오묘한 색감이다.

"무슨 차야?"

"마시면 잠 잘 올 거야."
"너는 환자니 술은 자제해."


"그리고 어제는 안 마실 수 없었어."
"너나 나나."

"옆에 앉아."
차를 한모금 마신다...
"...."
:행운 판정.
:실패.
... ...음.
이성 -1.


혀가 얼얼하다.

"나는 캐모마일 티에 우유 넣는 사람은 처음 봐."

두어모금 더 마신다.
:광기에 대한 적응으로 이성 차감을 하지 않는다.

차감한다.
:이성 -1.

더 마시지 않고 잔을 테이블에 내려놓는다.
"그래서..."
"하실 말씀은?"
"설명이라던가?"

"그러니까, 대화를 섞어본 적은 없고, ..."




"나도 당황스러워."

"거짓말 하지 말고."
"말하기 싫은가?"
:마지막 질문에 카일이 눈을 당신에게 옮긴다.
:당신을 쳐다보는 얼굴은 새하얗게 질려있고, 눈 밑으론 1인치 가량 다크서클이 껴 있으며, 왼쪽 얼굴은 슬슬 누래져있다.
그의 입이 무어라 말할 듯 움찔거릴 때,
관찰 판정.
몸을 카일을 향해 돌린다.
카일이 말하기 싫다고 하면 자신도 캐묻지 않을 것이고 그걸 카일도 알고 있을 것이다.
나쁜 안색을 들여다본다. 슬슬 걱정이 드는 참이다.
:몸을 돌리면 창문을 배경으로 카일이 보인다. 그 순간, 번개가 번쩍인다.
창 밖의 소음과 함께 어두운 집 안에 빛이 번쩍이고,
카일의 얼굴이 어두워지는 순간,
하얀 빛이 창문 밖에 서 있는 검은 실루엣을 그린다.
.....
여자?
:재도전 실패, 이성 -1
눈을 깜빡이고 창 밖으로 시선을 돌리는 순간,


뒷통수에 손을 얹고 눈을 감는다.

"음... " 가볍게 신음하며 허리에 손을 얹는다. 혀를 무리하게 넣지 않고 목을 축이는 마냥 입술 안쪽 살과 이를 살짝씩 핥다가 떨어진다.
"하..." 취한 사람 표정으로 눈을 들뜬다. "매튜, 빨아줄까?"

"아니."
소파 아래로 내려간다. 발치쯤에 무릎을 꿇고 앉아 허리춤을 내린다. 맨발을 자기 중심으로 당겨온다.
카일의 허벅지에 얼굴을 올려놓고서, 제것을 발바닥에 문지른다.
"하..."


귀까지 열이 몰린다. 카일의 정장바지를 이로 물어당기며 웃는다.

허릿짓에 맞추어 발이 좆 위에서 아래 위로 서툴게 움직인다. "큭.. 하학.." 입꼬리가 올라가자 손가락들로 입을 가린다.


목을 젖혀 머리를 제 어깨에 기댄다. 허벅지 위에 올린 머리에 손을 올린다.
습기를 머금고 이리저리 뻗친 머리를 짐승을 쓰다듬듯 천천히 쓸어올린다.

카일의 성기를 잡고 있던 손을 놓쳤다가 다시 잡는다.

부슬대는 머리칼을 쥔 손가락들에 본의 아니게 힘이 들어간다. 아래 위로 교차되며 올라오는 열감에 막힌 숨이 목을 타고 턱턱 올라오자 아랫입술을 잘근히 씹는다.
올라간 입꼬리가 부르르 떨린다. "아... 씨발... 자, 잠깐만,"
남는 손으로 제 것 위에 노는 매튜의 손등을 감싸쥔다.
"나...나 지금 싸면 너무 조루 같을까?"
떨떠름한 투로 의견을 묻는다.


"아.. 아니야."
다시 다문다.
벌린 엄지 발가락과 검지 발가락 사이로 젖은 중심부를 미끄러뜨렸다 올리길 반복한다.
이마 끝까지 벌개져선 곤혹스레 치뜬 눈으로 숨을 삼킨다. 기분만 좋은 흥분감보다는 약간의 요의를 느끼는 중이다.

카일의 것을 쥐고 있던 손을 놓고 두손으로 발과 제 앞을 모아잡는다.
초조하게 들리는 말투로, 카일의 발을 발등이 구부러질정도로 세게 쥐고 발바닥에 세게 마찰한다. 카일의 무릎에 기댄 이마가 자꾸 미끄러져 소파에 처박힌다.
헐떡이는 와중에 목덜미에도 핏대가 선다.


윽, 턱근육이 단단하게 뭉치고 발바닥에 흰 액을 토정한다.


"미안."
미끈한 것, 혹은 희끄므레 한것이 남아있는 손바닥으로 카일의 앞을 쥔다. 양손으로 기둥을 훑는다.


손목을 반대로 돌려 고쳐쥐고 천천히 움직인다.

"하," 숨을 짧게 토해낸다. 양쪽으로 활짝 벌린 허벅다리가 가볍게 떨리는 것이 느껴진다.
뱉은 숨을 다시 삼키고는, 허리를 앞으로 숙였다 바로 세운다.
삼킨 숨을 코로 내쉬며 어깨를 한 번 끌어올렸다 내리고,
스트레칭을 하듯 고개를 좌우로 천천히 젖힌다.
흘금 시선을 내려 허옇게 된 손을 본다.


눈을 비비고 싶은 걸 참는다. "그래."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씻으러 간다.
서로 갈무리를 한 후에는 카일이 먼저 자러갈 것을 권한다.


소파에서 자고 싶진 않다..
참고해달라.
:침대로 가도 된다...

:자리에 누우면 그의 말대로 어제보다도 순식간에 졸음이 몰려온다.
캐모마일 티, 약간의 정사, 그리고 당 스파이크.
빠른 취침을 위한 완벽한 조건이다.
어쩐지 독을 타 재우는 배우자의 이야기가 생각나는 조합이지만...
...
:검은 물결 속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뒤엉킨다.
:잠결에 옆자리가 꺼지는 느낌과 함께 이불이 사근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그러고 나면 거짓말처럼 속닥거리던 것들이 바닷물에 쓸린 모래성처럼 녹아 내려버린다.


:새소리가 들리면 깊고 젖은 밤이 끝났음을 알 수 있다.

눈을 떠본다.
:눈을 뜨기 전에...
주사위 1D4를 굴린다.

:왼 다리 위에 무언가 얹혀있다...

떨어져...
:덜그럭.

눈을 뜬다.
:왼 다리 위에 올라와 있던 것은
카일의 오른쪽 다리다.
덜그럭.

:카일이 당신의 다리 위에 한 쪽 다리를 얹은 채 자고 있다.
한 번 털어도 깨진 않았다.

:간 밤에 옆자리에 누군가 눕던 기억이 난다.

일단 침대를 털고 일어난다.
:당신이 일어나면 카일도 곧 일어날 듯 잠꼬대를 한다.
흠냐흠냐..




같이 놀란다.
"...!"
상체를 일으킨다.
"뭐야."
두리번대며 창 밖을 본다.

"굿모닝."

언짢은 얼굴이다.





"오늘은 내가 해 먹을게."
"같이 먹을래?"
:솔직히, 굳이 시키지 않아도 될 수준이긴 하다.
오히려 시키는 게 공수다.

침대에서 빠져나온다.
:기지개를 켜고 땅을 딛으면..
손목도, 발목도 어깨도.
시큰했던 아픔은 어제보다 확연히 줄어든 상태이다.
머리도 몸도 조금 더 가벼워졌다.

"요양이 효과가 좋구나."

:거실은 난장판이다.
오늘은 정말 청소라는 것을 해야할 지도..


이따 같이 치우면 될 것이다.
주방 냉장고를 열어본다
:냉장고 안에는 신선해 보이는 음식재료들이 정갈하게 정리되어 있다.
어디서 공수해온 걸까?
카일이 이렇게 이쁘게 잘 채워뒀다고?
입주 때 누군가 함께 와 정리해둔 것일 수도 있겠다.

식빵도 꺼내고.
꺼내다 보니 허기인지 욕심인지 들어서 계란도 꺼낸다.
찬장을 열어서 베이크빈 통조림도 꺼낸다.

뒤에서 지켜보고 있다.





베이크드 빈도 데운다.
넓은 접시를 꺼내서 베이컨, 스크램블 에그, 베이크드 빈을 올려놓는다.
"뭔가 부족해."


"냉장고에 요거트는 있던데."

"네가 먹을 거 아니면 안 꺼내도 돼."

맨날 간식만 먹으면 되나.
1인분 샐러드에서 매쉬드 포테이토만 꺼내고 풀은 다시 냉장고에 넣는다.
완성!
식탁에 올려놓는다.

"이거 내 건 안 한 거 맞지?"
양을 내려다본다.
믿기진 않는다.

카일이 좋아하는 종류가 없긴 하다.

"남으면,"
"너 먹고 남으면 나중에 먹지."
저 쪽이 입을 벌리자 먼저 말한다.
일어난다.
냉장고로 가 계란 하나를 꺼내서 앉는다.

숟가락으로 떠서 베이컨 조각과 계란을 떠 먹는다. "계란은 왜 가져왔어?"

:어제 당신의 손을 빌려 자해 놀이를 했던 부분이 푸르스름해졌다.

"큰일 났네."

"큰 일이야."

냠냠. 아침을 먹는다.


"어."
"어제 네 신발과 장갑을 벗긴 거 말고 또 뭐했는지 알아?"

"뭐 했는데?"
호기심이나 기대보다는 문답에서 소소한 즐거움을 느끼는 웃음이다.

"안 깨더라?"




"내가 한 번 살려준거야."



"쓰리 아웃?"

"여섯 번째까진 셌는데 그 뒤로는 잊어버렸어."

"이 쯤 되면 죽일 마음이 없는 거지."

"우선 당장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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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그간의 정을 봐서 3일전에 통보해줄게."
"편지라도 써서."
"마피아식으로."
어깨를 으쓱인다.

"얕보여서."


"식사 다 하면 오늘은 혼자 갔다 와."
"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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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묻는다. "어제 밤에 창밖에서 사람을 본 것 같아."

"집 안을 들여다 보고 있기라도 했나?"


"남정네 둘만 있어서 실망했겠는 걸."
"커튼이라도 쳐야겠군."


:카일이 창 밖을 보고 있다.
그는 오늘도 기분이 좋아 보인다.
특별히 좋다기 보단, 언제든 아무 일도 없으면 대체로 그는 웃고 있다.
옆얼굴에 엷은 살가죽이 턱뼈에 붙어있는 모습이 보인다.
눈을 뜨고 카일이 제대로 식사를 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카일은 원래 끼니를 대충 떼운다.
:하지만 그와 몇날 며칠을 같이 보낸 경험은 많이 없다.
그는 기초대사량이 매우 높을 것이다.
평소에도 이렇게까지 안 먹고 유지되는 활동력이라면 대단한 연비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어쨌든, 그는 오늘따라 더 퀭해 보인다.
광대까지 내려온 다크서클이나 얼굴에 든 멍때문에 그럴 수도 있다.
음영의 효과라 해야할까.

멍을 피해 짧게 입을 맞추고 빈접시를 들고 일어선다.
"설거지는 내가 할게."
싱크대로 향한다.



일어나 다가선다.
"내가 할게. 내비 둬."
매튜의 옆으로 다가와 싱크대를 짚는다. "... ... ."
코 앞까지 다가서서 뚫어져라 본다.
"... ... ."

"맞아. 레오네가 널 시종 부리지 말라했어."
"내가 빌어 빌어 여기 와서 포커나 치고, 술이나 마시고, 집안일은 가슴으로 낳은 사랑하는 양아들을 시킬까 걱정하더군."
"... 정말 말도 안되지?"


"실은." 입을 연다.
"실은 이 집에는 CCTV가 설치되어 있어."
"그래서 우리가 뭘 하고 있는 지 레오네가 볼 수 있어."

"뭐가 있다고?"

"아.. 아냐."
"설거지 해."
마지막 말은 궁시렁에 가깝게 작다.
"다 나았네."

거의 비명을 지른다.



"다 거짓말이었어."
"널 고생시키지 않기 위한,"
"하얀 거짓말, 알지?"
"무슨 뜻인 지?"

수세미 든 손으로 카일의 어깨를 쥔다.
"없는 거, 확실해?"

"우리 카포가 아무리 싸이코라지만..."
"자, 증명해줄게."
"만약 CCTV가 있었다면,"
"우리가 술 마시고 젠가를 한 바로 다음날에 난 끌려나갔어."

어깨를 꽉 쥔 손에 힘이 빠진다.


침울하게 중얼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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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세미에 세제를 묻힌다.

"우리 늦잠 잔 것 같고."
"낮에만 산책할 수 있고."
"시간이 많이 안 남았어."
"볕 쬐고 돌아다녀야 낫지."
"손에 피 한 방울.. 물 한 방울 안 묻게 해 줄게."

"많이 좋아졌어."
접시를 닦는다. "네가 말 안시키면 오 분이면 해."

자리에 앉는다.
일어서 다가온다. "그런데 그게 내가 말 시키는 거랑 뭔 상관이야."
"옆에서 떠들면 덜 지루하잖아."

"넌 할 거 없어?"
"씻던가."
"청소한다며 그걸 한던가."

"너 보내고 하려 했지."
"5분 만에 끝날 건 없어."
"청소든, 샤워든."

"그건 그런데...!"
접시를 박박 닦는다.

접시 쪽으로 고개를 기웃댄다.

"정신 사납고..."
:설거지 시간이 6분을 넘어간다.

"할 거 없으면 접시에 물기나 닦아."


"삼일 뒤에 죽일게. 너."

접시를 슥슥 닦으며 답한다.

분하다.
도저히 말로는 이길 수가 없어.
"산책할 때 잘라올 손가락이라도 찾아볼게."
식기들의 거품을 씻어서 카일에게 넘긴다.

"그래."
"농담인 건 알지만 그래도 사람들한테 말 걸고 다니진 마."
"우린 딱 봐도 외지인이야."
"네가 여기 있는 건 엄연히 비밀인데,"
"이것저것 물으면 성가시잖나."

지적하지 않는다.
한마디 하면 열마디가 되어 돌아올테니까...
"알았어."

"그리고 날이 지기 전에 꼭 돌아 와."
"기후가 그래. 밤만 되면 비가 오더라고."
"이번 달 내내 그럴 것 같아."
"흐려지기 전에 돌아 와. 알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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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에."
잔소리는...


대충 대답했다.
그렇게 귀담아 듣진 않고 있고 해변가에 가게를 찾아서 담배를 사올 생각만 하고 있다.

접시에서 삑삑 소리가 난다.
손짓에 비하면 심드렁한 투로 말한다.
"넌 투 아웃이야, 매튜."


"첫번째도 있었어?"

"넌 기억 못하겠지만."


"밤에 나갔다가 비를 쫄딱 맞고 돌아와선,"
"열 때문에 밤낮을 고생시키고선 다음 날 되더니 모두 잊더군."
"내 생각엔 네 컨디션이 너의 머리 속 기억저장장치를 좌우하는 것 같아."
"감기 기운이나, 뭐 그런 거."
"그러니까 비 맞지 마, 알겠나?"

"내 발로 싼 거 잊고 싶으면 맞든가."

미안하다는 말을 하려다가 마지막 말을 듣고 앓는 소리를 낸다.
"말 좀, 카일. 말 좀."
"알았어." 창 밖을 본다. "해지기 전에 올게. 바닷가까지는 가도 돼?"
"가까우니까. 금방 올 수 있으면 어디든 돼."
접시를 꽂는다.

설거지 끝!
:함께해서 도합 15 분이 걸렸다.

"다녀 와. 집 정리 좀 하고 있을게."

"다녀올게."

손을 흔들곤 다용도실로 향한다.

집 주변에 다른 산책로가 있을까?
밖으로 나오면 간밤에 비가 왔던 곳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만큼 화창하다. 젖은 땅도 보이지 않는다. 숲부터 해변가로 이어지는 길까지는 다른 길이 보이지 않는다.
무작정 걷다보면 여느 때 처럼 해변이 숲 사이로 나온다.
이상한 일이지. 해변은 어제완 달리 오늘은 또 비어있다.
다만...
:누군가 한 명이 서 있다.
여자다.
그녀는 곱슬하고 새까만 머리칼을 바닷바람에 휘날리며 파도가 밀려오는 해안선을 하염 없이 바라보고 있다.

"안녕하세요. 길을 좀 묻고 싶은데요."
근처에 가게가 있는지 물어볼 생각으로.
:그녀는 어제 본 다른 사람들과 달리, 반응을 하듯 당신의 말에 돌아본다.
돌아본 얼굴은 갓 구운 도자기 인형마냥 하얀 얼굴이다.
화장을 해주기 전의 인형처럼 혈색이 없으나, 선이 굵어 뚜렷한 이목구비와 짙은 눈썹, 커다란 눈은 아름답기 그지 없다는 표현이 어울린다.

:특이한 복장이다.
신화 속의 의상처럼 이질감이 느껴진다.
입을 열어 목소리가 나오는 것이 이질감이 느껴진다. 피그말리온이 빚은 조각이 있다면 이런 느낌이었을까. 아름다움의 의미에서도 그렇지만, 생기의 의미에서도 그렇다.

"네, 근처에 가게가 있는지 여쭤보려고요."
카일 외의 누군가와 말을 나누는게 오랜만이라는 점을 새삼 떠올린다.

"...몇 날 며칠을 걸어보았지만 가게는, 본 적이 없는 것 같아요."

"아, 외지인이셨군요."

매튜로부터 한 걸음 물러선다.
"깨어나니 이 곳이었어요."
:모래 위에 발자국이 남는다.
하얀 도자기 같은 맨발은 상처 하나 없다.

"무슨 일이 있었는 지."
"기억이 전혀 나지 않더군요."
"눈을 뜨고 나니 그랬어요."

"도움이 필요하실 것 같은데요."
뱉고 나서 말을 정정한다.
"그러니까... 위험하게 들려서요. 제가 도울 일이 있을까요?"

"도움은 받고 있어요."
"... 도움이라고 해야할까요."
미소 짓는다.
"...카일은 잘 지내나요."

"카일과 아는 사이였어요?"
그게 좋은 신호인지는 확신이 들지 않는다.
조금 웃으며 다시 묻는다. "카일에게 인사라도 전해드릴까요?"

"그이는 저희가 대화를 하는 것을 탐탁찮게 여길 듯 하네요."
:묘한 호칭이다.

"그 즈음이면 아는 사이라 해도 될까요?"
허락을 구하듯 묻는다.
"어제 해변에서 보았어요."
"두 분 친하신 듯 해서."

:뒷덜미가 뜨거워진다.
햇빛이 오늘따라 센가 보다.

'시발.'
:바닷물이라도 마시고 싶다.

"소식은 들었습니다."
"한 번 뵙고 싶었는데," 손을 든다. "최근에 좀 몸이 안 좋아져서."
"매튜 골드맨입니다."
그럴 듯한 표정을 짓고 있는가? 모르겠다.



"레테 씨. 안녕하세요." 이제야 얼굴 근육이 조금 풀린다.
"좀 걸을까요?"

발걸음을 옮기며 덧붙인다.
"... 얘기는 많이 들었어요."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말이다.
특히 이런 관계의 사람에게서 듣기로는.

:끔찍하다.

허허, 웃으며 묻는다.

"동생 같은 사람이라던데..."
"이제 보니... 반대 같은데, 맞죠?"
덧붙이며 정정한다.
"실례했어요. 그런 뜻이 아니라.."
"분위기가 그렇단 뜻이었어요."

"두 사람은 어떻게 만난거예요?"



"누들 가게인데..."
"음... ... ."
"걱정이네요."
"돌아가보아야 할 텐데."

"가게를 비우고 오신 거예요?"
"카일과 함께 돌아가기 위해 기다리시는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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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요. 그이를 기다리는 것은 맞지만..."
:평평한 푸른 하늘에 홀로 뜬 태양이 날카로운 빛을 바다에 널리 흩뿌린다.

"제가 뭘 기다리고 있는 지 모르겠네요, 이젠."
매튜를 본다.

눈가가 잘게 떨려와 고개를 잠깐 숙인다.
"결혼식이 두 달 뒤라고 했죠?"
"카일이 기대하는 것 같더라고요, 사진을 찍어야하니까 다이어트를 해야한다고 하질 않나..."

단호한 어투로 말한다.
"그 뜻이 아니에요."
"카일에게 신세를 지고 계시다고요?"
"카일이 당신께 신세를 지고 있는 것이겠죠."
"결혼식이라."

"전 그와 결혼을 하면 제가 어떤 이름이 될 지 조차 몰라요."
"알려주지 않았거든요."
"당신은 아나요?"

"아마 그에게도 의미가 없어서 알려주지 않은 걸 거예요."
"모두에게 그러거든요."

이번에는 조심스레 묻는다.
"제가 당신에게 알려달라 부탁하는 것은 부적절한 일이 될까요?"

"카일은 아마 제가 알고 있다는 것도 잘 모를걸요."
둘러대며 거절한다.

"사랑하는 사람들은 결혼을 하죠."
"카일은 그게 무엇인 지 몰라요."
"정욕과 집착이면 모를까."
:어쩐지 마음이 따끔댄다.
이 역시 햇빛이 세서... 라고 생각하며 하늘을 흘끔 보면, 맑던 하늘을 회색빛 어린 구름이 스멀스멀 덮고 있는 중이다.

:그녀가 가리키는 곳은 저택으로부터, 그리고 해변으로부터도 한참 떨어진 언덕이다.
HO 공개.

"함께 가보지 않겠나요."
"그렇게 하지 않으면 어떻게해도 제 말을 오해하실 것 같아요."
:하늘이 빠른 속도로 어두워지고 있다.
금방이라도 비가 올 것 같다...

니디아 레테의 팔꿈치를 쥔다.
"카일은 레테 씨와 결혼하고 싶어해요."
"하기 싫은 건 억지로 하는 성격은 아니니까요, 하고 싶은 거예요."
"그건 의미가 있어요."
하늘을 흘깃보고는 쥔 손을 놓는다. "죄송합니다. 가봐야 될 것 같아요."

"네, 의미가 있죠."
"끔찍한 의미가."
"카일은 저와 당신 모두에게 빚을 지고 있어요."
"저도 마찬가지죠."

맨발로 모래사장을 걸으며 천천히 물러선다. "돌아가 보시죠."
"곧 비가 올테니."
:그녀의 말은 무언가 뼈를 담고 있다.
당신을 보는 눈빛이 마치,
마치 비가 오면 나가지 말라, 라 카일이 당부했으리라 아는 얼굴이다.
그러나 이상한 일이다.
하늘이 충분히 어두워지자 본능적으로 목 뒤가 저릿하게 소름이 돋는다.
툭.
:어깨에 빗방울 하나가 떨어진다.
달려야 할 것 같다.

왔던 길을 되짚어 뛰어간다.
:뒤에서 레테가 외치는 목소리가 들린다.

"비를 맞아도, 당신에게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으니까!"
:하얀 저택을 바라보며 헐레벌떡 뛴다.
숲으로 들어서면 나뭇잎들에 빗방울이 부딪히는 소리가 들린다.
뺨에 빗방울 하나가 스쳐지나가고, 심장이 쿵쿵 뛴다.
숨이 찬다.
민첩 판정.
숨이 찬다. 빗방울이 소리를 무시하고 저택만을 바라보며 뛴다.
매튜 골드맨
bonus / penalty
4
:발목이 시큰시큰해 뛰기가 어렵다.
하지만 맹렬한 기세로 내달린다.
흙 위로 빗방울이 하나, 둘, 점을 찍기 시작할 즈음..
비가 쏟아지기 전에 무사히 저택에 다다른다.
쾅, 문이 닫히자 그제야 숨을 고를 수 있다.
:안으로 들어온지 고작 십여초 쯤 지났을까, 빗줄기가 창을 때리는 소리가 나고 그 소리가 두꺼워지더니 이내 쏴아, 빗소리가 사방을 감싼다.

자신의 행동에 대해 의아해한다.
혼란스러워하며 고개를 가로 턴다.
머리를 쓸어 정리하고 일어나 거실로 향한다.
"나 왔어."
:거실은 텅 비어 있다.
집 안에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는다.
소파 앞의 테이블에는 못보던 쪽지와 나무 막대가 달린 종이 놓여 있다.

쪽지를 들어 읽는다.
:쪽지에는 익숙한 글씨체로 그리 적혀있다...

"무슨 장난인지."
허리를 굽혀 종을 들어 흔든다.
:딸랑 딸랑... 소리가 울려퍼진다.
....
기다려도 카일은 나타나지 않는다.
맥이 풀린다.

:더욱 더 맥이 풀리는 점은,
거실에는 젠가가 쓰러져 있다.
술병도 여전히 나뒹굴고 있다.
마르라고 걸어둔 카일의 구두도 여전히 그 곳에 방치되어 있다.

젠가를 다시 쌓아서 진열장에 되돌려 놓고, 술병들은 모아 주방에 가져간다.
구두는 거기에 그대로 두고서 창밖을 본다.
:창 밖을 보면,
관찰 판정.

행깎하겠습니다.
:창문을 보면 저 멀리 숲 속에서 한 인영이 서 있다. 비를 맞으며.
여자의 인영.
니디아 레테다.
그녀는 이 쪽이 아닌 어딘가를 바라보는 듯 서 있다가는 뒤돌아 멀어진다.

어제 보았던 그림자가 신경쓰인다.
레테가 아니길 빈다.
바닥을 닦을 청소도구를 찾아본다. 지하실을 열어본다.
:지하실은 자물쇠가 걸려있지만, 열린 채로 걸려있다.
드나든 흔적이 보인다.
문이 살짝 열려있다..

:문을 열면 필라멘트 전구가 하나 달린 1평이 안되는 공간이 나온다.
그러나 아마도 계단으로 이어지는 곳으로 생각되는 곳에는 또 다른 철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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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문은 안 쪽에서 잠긴 듯 열리지 않는다.
열쇠구멍이 있다. 두터워 힘으로 열기는 어려워 보인다.

열쇠를 찾아 집안을 뒤진다.
침실의 협탁을 열어본다.
:협탁 위에는 전화기가 하나 놓여있다.
선이 가위로 자른 듯 잘려 있다.
이상한 일이지.
협탁 안에는 권총이 한 자루 들어있다.

탐탁치 않게 권총을 들어 이리저리 뒤집어보다가 허리춤에 꽂는다.
침대 아래나 이불을 뒤집어본다.
:문득 엊그제의 소동이 생각난다.
.. 침대 아래 공간이 꽤 있었던 것 같은데.
허리를 숙이면 깊숙한 곳에 기다란 무언가 놓여져 있다.
저게 뭘까.

몸을 침대밑에 넣고 손을 뻗어 그것을 잡아 당긴다.
:크기 판정.
:성공.
손 끝에 잡히는 것을 붙들고 침대를 빠져나온다.
손에 든 것은 칼집을 쓴, 중형의 도검처럼 보인다.

칼집을 살짝 열어보고 날을 확인한 뒤 침대 옆에 내려놓는다.
:날을 보면 쇠가 아니다.
일종의 예술품이었던 모양일까.
근사한 문양이 새겨진 손잡이는 쇠로 되어 있으나 칼날 부분은 끝이 날카롭고 긴 상아 조각품이다.
무기로 쓰기에는 불편하겠지만, 여전히 베거나 찌를 정도는 될 듯 하다.
조각품이라기에도 애매하고, 무기라기에도 애매하다.

"열쇠가 어디 있을 텐데."
욕실로 향한다. 욕실 배수구를 열어본다.
:배수구의 뚜껑에 카일의 것으로 유추되는 짧은 머리카락들이 어제 보았을 때보다 훨씬 많이 엉겨붙어 있다.
머리가 많이 빠지나.
그럴 지도 모르겠다. 밥을 먹지 않고 있으니.
열린 배수구 아래에는 그보다 훨 다양한 머리카락들이 엉겨붙어있다.
짧은 갈색의 머리카락, 붉은 색의 머리카락...
가장 많이 보이는 것은ㅡ
:뚜껑을 열자 밑단에 엉겨붙은 길고 검은 머리카락이 끝도 없이 길게, 길게, 빠져나온다.
SanC 0/1
:성공.
숙이고 있던 허리를 일으켜 일어서도 끊임 없이 나온다. 마치 사람의 목을 붙들고 있는 모양새가 된다.
물기에 젖었으나 머리칼은 곱슬거리는 모양새다.

:갑작스레 그녀의 말이 떠오른다.
그는 우리 모두에게 신세를 지고 있다는 말.
자신 또한 두 사람에게 신세를 지고 있다는 말...
자신이 이해한 바가 맞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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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의미한 것일까.

배수구 덮개를 내려놓는다.
창밖에 내리는 비를 보며 소파에 앉는다.
권총을 손 닿는 거리, 테이블 위에 올려놓는다.
이상한 칼도 소파아래에 내려놓는다.
:어쩐지 몸에 기운이 없어서 맥이 풀리기도 한다.

'먼저 잔다.'
'오면 종 울려!'
:쪽지를 남겨두고 소파를 지킨다.
빗소리를 듣다보면 여지없이 눈이 감긴다.
깊은 심연이 당신을 끌어들이는 속도는 무서우리만치 빠르고 당기는 힘은 달콤하기 짝이 없다.
온 세상엔 오직 비내리는 소리만이 가득하다.
...
:...
깊이 잠들어 있던 당신의 의식 끝을 무언가가 건드린다.
정신은 깨고, 몸은 그렇지 못한 양.
가위에 눌린 마냥 몸이 움직여지지 않는다.
눈꺼풀이 무거워 눈을 뜰 수가 없으나 느껴진다.
뺨과 목덜미를 닦아내는 천의 질감이.
:며칠째 시큰거렸던 발목을 주무르는 손길이 느껴진다.
차갑고 긴 손가락들.
눈을 뜨지 않아도 이 손의 주인이 누구인 지 아는 건 우스운 일이다.
밤마다 이런 일이 이어졌을까?
감각이 다시 멀어진다.
조금씩,
:느릿하게,
그리고 까맣게.
심연의 한 조각 위에 선 당신은 두 눈을 감은 채로 또 다시 목소리를 맞이한다.
:여러 음성들이 섞이는 와중, 또렷한 음절이 귀에 내리꽂힌다.
:긍정도 부정도 하지 못하는 당신을 무언가가 짓누른다.
:목소리가 갈라진 틈새에 들어온다.
:그 목소리를 듣자마자, 조용한 비명과 함께 발목을 잡힌 마냥 의식이 깊은 심연으로 끌어당겨진다.


:새소리가 들린다.
익숙하다.

적응한 것 같다.
:더 이상 눈을 뜬 직후 정신이 방황하지 않는다. 창문에는 습기가 어려있고 주방에선 고기 냄새가 난다.

꾸물꾸물 일어난다.
오늘의 기분을 확인한다.
눈 뜨자마자 기분이 좋은가 나쁜가...
확인했다.
일어난다.
:상체를 일으킬 즈음 문이 열린다.

눈이 마주치자 웃는다.
"일어났나?" 방 안으로 들어온다.
침대에 털썩 걸터 앉는다. "피곤하셨나보군. 일찍 잠든 것 같던데."

어제 분명 따질게 많았는데 뻔뻔하게 웃으면서 얼굴을 들이미는 꼴을 보니 어디서부터 따져야 할 지 모르겠다.
"어디 갔었어?"
그렇게 일찍 들어오라고 잔소리를 하길래 집에서 기다리고 있을 줄 알았더니.

"여긴 통신 연결이 안 되어 있거든. 안전가옥이니까."

"..."
"내가 여기 있는 거, 레오네가 시킨 건 맞지?"

"그럼 누가 시켰겠어?"
무슨 소리냔 투다.
"아."
"설마."
"내가 배신이라도 했을까봐?"


"이제와서 말하지만,"
해명하기 시작한다. "내가 이번 교전에 나가지 않으려한 이유는 여기서 너와 놀고 먹기 위해선 아니었어."
"말하기 뭣해서 안 말했다만, 이제 알겠나?"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본다.

"날짜 얼마 안남았는데 나갔다 배라도 쑤셔지면 곤란하잖아."
재빨리 덧붙인다. "요지는 뭐, 배반했다거나, 널 빼돌렸다거나, 다른 속셈이 있어서 내가 여기 온 건 아니야."

한참동안 카일의 표정을 들여다본다.
"그런 현명함이 있었단 말이야?"
"장가 보내도 되겠군?"
기특해한다는 투로 말한다. 놀리는 중이다.

"할 말은 더 없지?"
자리에서 일어나려한다.

레테를 만난 이야기를 할까 생각했는데, 굳이 그럴 필요 없을 것 같다.

"타겠네." 중얼대며 방을 나간다.

"불을 켜두고 나가면 어떡해."

:부엌에서는 고기 냄새 대신 약간의 탄 내가 난다.
접시 위의 베이컨은 첫날 먹었던 것보다는 조금 더 많이 익었다.
까만 기름이 나온다. 못 먹을 정도는 아니다.

바삭바삭하게 튀겨진 베이컨은 포크로 잘 집히지도 않는다.
별 수 없이 손으로 집어 먹는다.

:오늘의 컨디션은 상당히 좋다.
처음 여기서 눈 떴을때와는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다.
햇살을 받으며 밥을 먹으면 기분도 조금 해이해진다.
기분 좋은 일이 생길 것만 같은 날씨다.

조금 놀란 듯이 말한다. "다 나은 것 같아." 베이컨을 들고 스트레칭도 해본다.





기분이 저조해진다.
"의외로. 적성이 이런 쪽일지도."
:하나 신경쓰이는 게 있다면 오늘 카일은 어제보다 더 피곤해보인다. 볼이 움푹패인 탓에 광대가 도드라져 보인다. 어제는 그제보다 피곤해 보였고, 그제는 첫 날 보다 피곤해 보였다. 얼굴에 내려온 피로가 갈수록 짙어진다. 여기 온 이후로 본 모습은 밥 먹고 놀러다니는 것 뿐인데, 이상한 일이다.

뭐 어쩌란 말인가?
:조금 쉴 수 있게 오늘 산책은 어제처럼 혼자 가는게 나으려나?
거기까지 생각이 닿자 문득 어제 만났던 이가 떠오른다.
그 여자, 비를 맞고 있었다.

뭔가 잔소리하고 싶은데 간섭하는 말을 하고 싶지 않다. 한 사나흘 전 부터였나?

"이 주 정도 얘기했는데, 사흘 정도면 돌아갈 수 있겠어."

"퇴원은 빠를수록 좋지."

:관찰 판정.
:카일이 손을 올려 입을 가린다.
:입을 가리면 그늘에 가려있던 손에 햇볕이 닿는다.
검은 가죽 장갑이 약간 반질반질하다.
검어서 잘 보이지는 않지만,
피다.
닦아낸 건지 색이 흐릿하기는 하지만 분명 피가 묻은 자국이다.

피?
이성 -1

"여기 오고 아침 잠이 많아졌어."
"할 일이 없어서 그런가 보지."
"술집도 없고, 카지노도 없고."
순간적으로 미간이 좁아진다.

"... 졸려."
"더 잘래?"
:같이 좀 더 자자는 것 같다. 잠이 깼다면 혼자 나갔다 오는 게 나을 것 같다.

카일이 지금 자신에게 뭔가 숨기는 게 있는 건가?
"나는 산책이나 다녀올게."

"역시 어버이 날에 편지는 생략하지."
테이블에서 일어난다.
:의자가 밀리자마자 카일이 크게 휘청거린다.

고개를 떨군 채 잠시 뒤 숨을 후, 내쉰다.
"... 아,"
"그래, 매튜."
생각났다는 듯 말한다.
"실은 네게 숨긴 게 있어."

"숨긴 거?"

:하나가 아닌가보다.

"어제 네가 잘 동안,"
탁자를 짚은 손을 가슴에 가져간다.
후, 숨을 내쉰다.
"나가서 한 잔 했어."
"어딘 지는 묻지 마. 데려가야 할까봐 혼자 갔다 왔으니까."

눈만 위로 슬쩍 올린다. "비를 맞지 마."
"죽을 수도 있어."
"무슨 말인 지 알겠나?"
"오늘도 일찍 들어 와."

"장갑에 피가 묻어있던데."


"다른 건 다 알겠는데, 대체 비에 왜 그렇게 신경 쓰는거야?"
"네가 그렇게 말하니까 나까지 불안해진다고."
"너랑 한 약속 때문에 내가 어제 얼마나 뛰었는지 알아?"
"매튜."
"미친 소리처럼 들리겠다만,"
"이번 일주일이 내겐 아주 의미가 커. 중요하다고."


"언제 또 이렇게 긴 시간을 같이 보낼 수 있겠나?"
"그닥 상식적으로 들리진 않겠다만은, 나는 여전히 널 꽤 좋아해."
"그러니까 마지막 선물로."
"그냥 내 말 들어줘."

진심으로, 머리가 아파서 산책이 필요해지는 것 같다.
카일은 뭔가 잘못알고 있다.
아닌가?
접시를 치우고 자리에서 일어나려 한다.
"피곤할텐데 가서 쉬어."
:카일은 취한 사람 마냥 갈 지 자로 침실로 걸어들어간다.
털퍽! 침대에 엎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늘 가던 길을 따라가 숲을 빠져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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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해변에는 이틀 전 처럼 사람들이 거닐고 있다.
다만.. 그 때와는 다르다.
가족끼리 온 이들, 연인끼리 온 이들.
:그들은 나란히 걷거나 대화를 나누거나, 아직은 차가운 바다에서 물장구를 치고 있거나 하고 있다.
모래성을 쌓는 이도 보인다.
사람 같은 사람들. 어쩐지 오랜만에 보는 광경이라 그런 것일까.
위화감이 든다.

사람들 중 하나에게 다가가 말을 붙인다.
"안녕하세요, 길을 좀 묻고 싶어서요."
:아이와 캐치볼을 하며 놀아주고 있던 남자가 고개를 돌려 답한다. "아, 네. 어디 가시는 길이죠?"

정상적인 반응에 눈을 끔벅인다. 곧 정신을 차리고, "근처에 담배 가게가 있나요?"
:"담배 가게라.. 담배만 전문적으로 하는 가게를 말씀하시는 걸까요?"
묘한 질문이라고 생각하는 표정이다..
이어 덧붙인다.
"작은 섬이라 그런 가게는 없고.. 마트는 차를 타고 가시면 나올 겁니다. 담배는 거기에도 있어요."

좌절한다.
:"그리고, 여기가 환경 보호 구역이라..."
"여기선 담배 못 피십니다."
"그래서 가게도 근처에 없고.. 네."

"아, 그랬군요. 몰랐습니다."
"혹시 그럼... 오늘밤 날씨를 좀 알 수 있을까요?"
"며칠 여기서 지내는 동안 밤마다 비가 왔던 게 아쉬워서요."
:"오늘도 밤부터 비가 온다더군요." 남자가 답한다.
관찰판정.
:아쉽게됐다는 표정이다.
"기후 영향을 많이 받는 섬이라서요."
"이해 부탁드립니다."

떨떠름한 표정으로 사양한다. "부탁이랄 것까지야..."
금방 덧붙인다.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환경보호 구역이라는 점이나, 기억해놓겠습니다."
:"예. 집에 들어가세요. 비가 오면."
그는 카일이 하던 말과 같은 말을 하곤, 캐치볼을 던져주지 않아 투정을 부리는 아들에게 돌아간다.

"뭐야?"
일상적인 말이긴 한데...
음?
이게 다 카일 때문이라고 탓한다.
걔 때문에 정신을 못차리는 것 같다.

:당신을 이렇게 만든 카일은 집에서 쿨쿨 자고 있을 것이다.
참고하자.

참고 안한다.
:바닷가에서 눈을 돌리면 멀리 레테가 말한 언덕이 보인다.
척 보기에도 저택에서 꽤 멀어보인다.
시간이 여유롭지 않을 것 같지만... 뛰어오면 저녁 전엔 돌아올 수 있겠지 싶다.
참고해라.

하...
언덕으로 향하며 혼자 생각하기를,
차라리 카일이 유부남이 될 예정이라 심란한 마음에 찔러보는 쪽이 마음이 편했을거라 생각한다.
카일은 그걸 모른다.
사실 그렇게 생각했었는데.... "모르겠다!"

오르막길에 숨이 찬다.
:언덕 위로 올라가면 고지대의 바닷바람이 세차게 분다.
끄트머리에 가까운 어드메 즈음 익숙한 뒷모습이 보인다.
레테가 짧은 풀 위에 앉아있다.
검은 머리칼이 바람에 휘날리는 모습이 보인다.
그녀는 앉아서 책을 읽고 있는 듯 보인다.

숨 한번 고르고, "여기 계셨네요!"
약속이라도 했던 사람처럼 말한다.

미소 짓는다. "안녕."
"비 말이에요."
"엄청 맞았는데. 나 이상하지 않죠?"
:어제보다는 좀 덜 딱딱한 말투다.
그렇다.
비에 흠뻑 젖는 것을 멀리서 봤는데 멀쩡하다.
적어도 죽은 것처럼 보이진 않는다.

"옆에 앉아도 돼요?"


"그렇네요."
"감기는 안 걸렸어요?"

"읽어보실래요?"
읽던 책을 건넨다.

"무슨 책인데요?"
책과 사이가 좋진 않다.
:제목에는 <피그말리온과 갈라테이아> 라 쓰여있다.

:HO. 피그말리온과 갈라테이아 공개

"조각상의 이름은 갈라테이아였죠."

"여태 반대로 알고 있었네요."

"그래서 말씀드려 봤어요."
"잘못 알고 계셨다니, 다행이네요."


:언뜻 본 그녀의 얼굴에서 생기가 비친다.
지난 날 보았을 때 보다는 조금 더, 사람 같다는 느낌이다.



고개를 들고 레테를 본다.
"그러고 보니 지금 지내는 집 이름도 그 조각가에게서 따왔나봐요."
"이 책은 좋아하는 책이에요?"

당신에게 눈을 마주친다. "조각가가 사는 집이니까요."



"조각에는 관심없을걸요."

:그녀가 하는 말은 곧바로 이해가 되지 않는다.

"누구를 말하는 거죠?"

"몸은 좀 괜찮아지셨나요, 골드맨 씨."

"이번주 안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 같아요."

"당신은 이번주 안으로 돌아갈 수 없어요."


"카일이 당신을 필요로하고 있거든요."
"조각을 끝내기 위해서."

"누가 뭘 끝낸다고요?"
"카일이 그렇게 말했어요?"


"레테 씨, 저 이 대화를 따라갈 수가 없는 느낌인데요."

"카일이 당신에게 빚을 지고 있다고."
"당신이 이해한 그런 의미만은 아니었을 거예요."
"그는 당신이 알고도 속아줄 사람이라고 생각하나 보네요."
"사람들에게서 이상한 점을 느낀 적이 없으신가요?"

사람들 이야기가 나오자 고개를 끄덕인다. "이상했어요." 이곳에서 만난 레테를 포함해서.

"교통사고를 당해서."
"제가."

레테의 말을 역순으로 조합해낸다.
"그래 보이지는 않는데요."

"제가 살아있는 사람처럼 보이나요."
"당신처럼... ... ."

무섭다.

"그러게요."
"속으셨나요?" 쿡쿡 웃는다.


"진짜 같았어요."

"만약 카일이 당신으로 하여금 절 되살리고 있다고 말한다면, 그것도 우스운 농담이 되겠죠?"
"당신 뿐 아니라 해변에 있던 다른 많은 사람들도."
"말씀드렸듯,"
"저와 카일은 당신에게 빚을 지고 있어요."

"제가 말씀드린 것은 농담이 아니에요."
"골드맨 씨."
"살고 싶다면 여기를 떠나세요."
"비가 그 길을 알려줄 거예요."
매튜가 들고 있는 책을 가리킨다. "혹은, 그 책이."

:어려움 성공.
당신을 보는 눈빛에서 당혹스러움을 깊이 이해한다는 감정이 느껴진다.
그러나 그 눈을 뚫어져라 보고 있자면, 슬픔, 광기, 기쁨, 절망과 열락, 당신이 아는 거의 모든 감정이 그녀의 눈빛으로부터 느껴진다.
머리가 어지러워진다. SanC 0/1
확실한 것은, 그녀는 오래전부터 제정신이 아닌 것 같다.
:펌블.
갑작스레 머리가 강렬하게 아파온다. 어떤 기억이 머리 속을 스쳐지나간다.
관자놀이 쪽에 전기가 튀는 듯 찌릿한 고통이 느껴진다.
눈 앞으로 조각난 장면들이 덕지덕지 겹친 채로 지나간다.
머리를 짚은 당신의 손바닥이 온통 피로 적셔진다.
둔기를 휘두르는 누군가의 얼굴이 빠르게 스쳐간다.
:곧장 뒤통수를 얻어맞은 것처럼 몸이 휘청거리고 힘이 빠진다.
무기를 휘두른 그 사람은,
분명 카일이었다.
이성 -2.

핏기가 가신 낯으로 허공을 멍청히 바라본다.

"알고도 속아줄 사람이라는 말에, 당신이 동의했으니까."
"당신을 재워놓고,"
"아니면 당신을 지금처럼 밖으로 내보내놓고,"
"뭘 하는 지 캐물어보지도 않았죠."

"이제는 나에 대해 다 아는 것처럼 말하네요?"

"절벽 아래를 봐요."
"거기에 당신이 찾던 답이 있으니까."


절벽 아래를 확인한다.
:아래를 보면 언덕의 아랫부분을 때리는 파도가 보이고,
청량한 푸른 파도의 색깔을 뒤덮는 무언가가 보인다.
절벽 끝자리에 무언가가 계속해서 둥둥 떠다니며 떠밀려온다.
몇개의...
팔과 다리, 머리, 터진 머리들, 내장이 선연하게 드러난, 사람, 사람, 시체, 시체,
수 많은 사람들의 시체들.
:이성 판정 1d3/1d5
:발 아래 멀리 떨어진 것들이어 시선이 마주치지 않는다.
그러나 살아있을 리가 없다.
사지가 무언가를 시도한 마냥,
온통 벌레들처럼 분해되어 둥둥 떠다닌다.

2
(To GM): 환청 폭력충동 불신 감정폭주

:시체는 누운 것도 있고 엎드린 것도 있다.
파도가 밀려올 때마다 물 아래로 위로 떠밀린다.
그리고 당신은 거기에서 익숙한 이목구비를 발견한다.
모래사장에서 제 발에 걸려 넘어졌던, 그리고 어딘가 행동이 이상했던 사람도 시체에 섞여 있다.

"신기한 일이에요."
"저 사람들도 얼마 전까지는 살아서 움직였어요."
"지금은 저렇게 물이나 먹고 있네요."
:속이 메슥거린다.

"저 중에 하나는 당신이고요?"

"제 말을 되짚어보세요, 골드맨 씨."

"카일이 빚을 지고 있다고요."
고개를 끄덕인다.
"나와 해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빚'을 져서 당신을 살리고 싶어한다고."
머리카락을 쥐던 손가락을 활짝 펼쳐서 내보인다.
"내가 이해한 게 맞나요?"

"저는 이 곳에서 죽지 않았어요."
"이 곳은 키프로스 섬."
"저는 이 일주일이 지나면 완성될 그의 조각이에요."
:하늘이 어두워지기 시작한다.
툭, 투툭.
발 위에 빗방울이 떨어진다.

"정욕과 집착 밖에 모르지."
:대화를 너무 오래한 것일까.
벌써부터 먹구름이 모여들기 시작한다.
습기와 함께 불길한 기운이 목덜미를 엄습한다.
시야에 무기를 내려치던 거의 얼굴이 겹쳐진다.

"가셔야 하지 않나요."

몇걸음 멀어져서는 아예 뒤돌아 달리기 시작한다.
아!
레테가 했던 말이 떠오른다.
뭐라고 했더라, '내가 말을 잘 듣는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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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란한 상태로 저택을 향해 달리기 시작한다. 이미 저택의 위까지 다다른 검은 구름이 무거운 빗줄기를 마구 쏟아내고 있다.
저택은 멀었고, 당신은 점차 비에 젖어간다.
해변가의 사람들은 비를 피하기는 커녕 모두 주저앉은 채로 머리를 감싸고 있다.
왜 다들 저러고 있는 걸까.
갈 곳이… 없는 걸까?

겉옷을 벗어 머리 위에 뒤집어쓴다.
:문득 집을 나오기 전 카일이 한 말들이 떠오른다.
:이성 판정 0/1
:이제 와서는 다른 뜻으로 들린다.
다시는 같이 보내지 못할 시간. 그리고 당신이 그에게 줄 '마지막 선물.'
그 순간, 돌뿌리에 발이 걸린다.
당신은 그대로 땅 위를 날아 바닥에 처박힌다.
넘어지며 둥그런 돌에 머리를 그대로 찧는다. 눈 앞이 크게 흔들거린다.
아아, 이젠 빗물이 당신의 얼굴을 마구 뒤덮는다.
:차갑고, 차갑고, 차가운 그것들이 얼굴을 마구 때리며 흘러내린다.

던져두고 몸을 하늘을 향해 뒤집는다.
:빗물과 함께,
:아쉬운 듯한 그 목소리.
환청인 지 착각인 지가 재킷을, 온 몸을 축축히 적신다.
사방에 빗소리가 가득하다.
의식이 깜빡, 깜빡거리다가는...
갑자기, 까맣게 저 아래로 꺼지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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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달그락거리는 소리.
문이 열리고, 의자가 끌리는 소리.
목소리들.
바퀴가 구르는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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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 없는 비명과 함께 꺼지는 의식.

:따뜻한 목소리가 잔상처럼 남는다.
잠에 들었던 건지 기절을 했던건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무언가가 당신의 몸에 스치고 있다.
마른 천의 질감.
의식이 천천히 수면 위로 떠오른다.

:한 걸음 뒤에서 젖은 수건으로 제 손을 닦고 있는 카일이 보인다.
손가락 마디 마디에 긁히거나 베인 상처가 있다.
자신의 두 손이 시야에 들어온다.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멀쩡하다.
죽지 않았다.
비를 맞으면 죽는다고, 그가 그랬었다.

안 죽었네?
상체를 일으켜 테이블을 향해 손을 뻗는다.
거기 올려뒀던 총을 집어들고 소파에서 일어난다.
터덜터덜 일어나 걷는다.
:테이블 위에는 첫 날 주방 식탁에서 보았던 약이 놓여있다.
지금은 알 바 아니다.
기척을 듣고 카일이 돌아본다.

"굿모닝."

그래도 답한다.
"굿모닝."

"카일 어딨어?"

어이가 없다는 투다.
이마를 짚는다.
창 밖을 보고, 다시 한숨을 쉰다.
양 손 올렸다 내리고,
"... 오케이."


의문문으로 말을 맺는다.

"진심이야, 매튜?"
"내가 너에게 거짓말을 안한다고?"
"네가 속아주는 거겠지!"

"거짓말하기전에 해달라는 걸 다해주는데 굳이."
"걔가 머리 굴릴 기회도 준 적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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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일 어딨냐고."
총을 흔든다.

"비 맞았잖아."
"내가 그렇게 지랄 염병을 떨었는데 비를 처 맞고 돌아오셨잖나."
"씨팔, 됐다."
흔드는 총을 가리킨다.

"거기 올려두시기 전에 탄환 있는 지는 확인해 봤나?"

안전장치를 풀고 카일?을 향해 방아쇠를 당긴다.
:매튜, 행운 판정.
:철컥. 소리가 나자마자 카일이 이쪽으로 튀어온다.
민첩 혹은 근력 대항 판정.
매튜 골드맨
bonus / penalty
0

"네 몸이 여전히 잘 굴러가는 줄 아나본데."
미끄러져와 왼쪽 발목을 발로 뻑 찬다.
"지금 너는 내가 칼 없이도 제압할 수 있어." 넘어질 찰나에 팔을 뒤로 꺾어 잡고 엎드리게 한다.
:발목에서 소리가 들린 듯 하다.
단순히 까인 것만으로도 끔찍한 고통이다.

윽, 하는 소리를 내며 넘어진다.
"어딨냐니까?"
벗어나려고 해본다.

"제정신이 아니군."
꿈틀대면 구둣발로 발목을 콰직 밟는다.

:이성이 휘발되는 통증이다.

입술을 혀로 축인다. 카일?을 똑바로 올려다보며 입을 연다.
"니디아를 만났어."
성씨가 아니라 이름을 기억해내 부른다.

어깨가 부르르 떨린다.
"큭... ..."
"아학... 아하학..." 고개를 어깨에 묻은 채 신음한다.
"남의 약혼녀랑 만나서 뭐 하고 다닌 거야?"


말꼬리를 길게 늘어뜨린다.
"너무 바라던 바인데."
"그래서, 네가 뭐라고 답해줬나?"

발 치워봐 좀...
아파...

"매튜."
"네 꼴 좀 봐."
"웃겨 죽겠네."
"내가 더 웃기게 만들어줄까?"
어깨를 내리누르며 골반으로 손을 가져다댄다.

"사람이 왜 그렇게 뻔뻔해?"

목을 길게 빼서 바닥에 바짝 눌러 피한다.
"내가?"
"뭐가 뻔뻔한데. 그리고 대가리 치워, 이 새끼야."
밀친다.

"웃긴 일이지."
"너도 내 허락을 구하지 않는데, 내가 왜 네 허락을 구해야 하나?"
"아아, 알겠다."
"내가 널 좆나 좋아하고, 그걸 네가 알기 때문에?"


"이제 알겠다."
"비슷한 처지라 이입이 되셔?"

"... ... ."


허리를 누르며 묻는다. "매튜."
"우리가 얼굴을 보고 얘기하는 것도 이제 마지막일 것 같군."
"그런 김에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허락을 구해보지."
"강간해도 되나?"

카일?의 멱살을 들어 옆으로 밀어넘긴다.
최소한 시도는 한다.

"그래. 내가 아니야."
"내가 아니라고 믿어, 매튜."
"나도 그게 차라리 좋아."
발목을 찍어누르며 벨트를 끌르기 시작한다. "우리가 이런 식으로 몸을 섞어본 적이 없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이 행위로 내가 아니거나, 내가 맞거나, 그런 유추는 못할 거 아니야."


바지춤을 붙들기 위해 아래로 손을 뻗어 뭐든 쥔다.
"무슨, 그만해."
무릎을 들어 카일?을 밀어낸다.
귀를 깨무는 카일?의 머리카락을 쥐어 뜯는다.

목을 움켜쥐고 악력에 힘을 준다. "으, 매튜... ."
"젠장, 뭐 어때, 우리 이제 다시는 못 본다고."
"마지막이란 말야."
"그 오랜 시간 동안 나랑 한 번도 하고 싶지 않았나?"
"아니면 포지션이 마음에 안 드는 건가?"

"먹으면 바로 기절할 수 있어."
속옷을 벗기고 둔부의 갈라진 틈 새로 선 것을 비비적 댄다.
"의식이 없는 상태로 하는 것도 난 괜찮아."

할말이 있는 사람처럼 입을 뻐끔댄다.


뒤에 비비는 것보다 지금 마음에 걸리는 게 하나 있어서 도저히 견딜 수가 없는데...
카일의 얼굴로 카일처럼 말하는 것 때문에 만에 하나, 라는 불안감을 멈출수가 없다.
카일?의 손목을 붙잡고 말한다.
"아까 한 말은 진심이 아냐."

다그치듯 묻는다.



"카일한테 한 얘기야."


떨리는 목소리로, "... 매튜, 하나만 물어보자."
"내가 내가 아니었다면.. 언제부터 아니었을까?"
"여기서 눈을 뜬 순간부터?"
"너한테 우유에 불린 시리얼 줬을 때부터?"
"앞으로 몇날 며칠은 담배 못 할 텐데 돛대 넘겼을 때부터?"

"아니면 뭐, 빨아준다 했을 때부터?"
"널 때렸을 때부터?"
"아니면 지금?"
"언제부터?"

"처음 여기서 눈을 떴을 때부터겠지."

"씨발, 좆같게... ... ."
울 것 같은 목소리다.
침을 한 번 삼키고 나면 바로 원체의 목소리로 돌아온다.
둔부를 움켜쥐고 벌리며 손가락에 침을 퉷 뱉는다.
손가락 두 개를 뻑뻑한 입구에 쑤셔 넣는다.


카일?의 팔뚝을 잡아챈다. "진짜로 할 생각은 아니지?"
자기 목소리를 좆같아 한다.

"그래."
"너와 시시때때로 키스하고 싶어한 것도, 바깥에서 빨아준 것도, 네 손에 간 것도, 아, 진짜로 할 생각은 아니었어. 그렇게 할 생각은 아니었는데 어쩌다보니 그렇게 됐어."
"그렇겠냐? 난 하루 웬종일 너랑 섹스할 생각 밖에 없었어, 이 새끼야."
팔뚝을 잡히자 팔꿈치로 척추를 세게 누른다. "매튜, 나는 풀어주려 했어."
번들하게 젖어 직립한 좆을 입구에 대고 어거지로 밀기 시작한다.

"손해봤네."

갑작스러운 침입에 생각이 다른길로 새지 못한다.,
"아, 아!"
갑작스러운 침입에 무릎을 세운다.
손바닥으로 바닥을 짚고 상체를 일으키려 한다.

허리를 붙들고 내벽을 찢어먹을 새로 밀어넣으며, "가만히 좀 있어, 개새끼야.."
중얼댄다. "너 때문에 나도 아프잖아... ."

복부를 얻어맞아 등이 구부러진다.
이를 악물고 씹어뱉는다. "그럼 빼세요. 응?"

"내가 신뢰도가 낮긴 하지."
"나 대신 처음 본 여자 말이나 듣고." 짓씹듯 중얼거리며 뿌리 끝까지 넣었다가 숨을 고르며 빼길 반복한다. 느릿느릿.
"으, 하지만 말야.. 그러고 나서, 나보고, 뭐?"
"내가 거짓말을 안 쳐?" 밀어 넣을 때면 얼굴이 다시 일그러진다.
서서히 속도를 붙여 허릿짓하기 시작한다. 철퍽대는 소리가 요란하도록 뿌리까지 쳐박았다 빼길 반복한다.

"날,"
"좋아해서,"
성감때문인 지 분노 때문인 지 머리 올려 드러낸 이마가 붉어진다.

낯빛이 질린다. 뭉툭한 손끝이 마룻바닥을 긁는다.
윽윽대는 소리나 내며, 식은땀에 젖은 머리카락이 피부에 들러붙는다.


실핏줄이 터진 눈알로 카일?을 본다.
"너, 으, 죽여버릴거야."

"피그말리온이 갈라테이아를 찔러도 이 공간은 무너지지만,"
"그 반대도 마찬가지야."
"자비로운 여신께서 우리에게.. 하아," 인상을 찌푸린다. "하아, 씨발, 쌀 것 같아."








:온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아무리 회복중이라 한들, 이 자는 분명 체력이 좋지 않은 상태였다.
등 위에 들러붙은 체적도, 그리 무겁지 않다.
그럼에도 완력으로 도저히 이길 수가 없다.
그의 몸보다, 내 몸이 무겁다.
팔을 쳐내 빼내는 순간 폐 깊은 곳으로부터 비명이 흘러나온다.
:팔목 부근의 살점이 마치 덜 말린 점토처럼 쭈글쭈글 밀려나 있다.
이성 판정 0/1

"어...."
:잘못 보았나 싶어 확인해봐도 여전한다. 살점은 마치 오랜 시간을 들여 녹여낸 촛농처럼 어그러져 있다. 머리가 아파온다, 또.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건지 모르겠다. 아니, 정말 모르는걸까, 나는?

들러붙는 피부 감촉에도 소름이 돋는다. 카일? 카일?
정신이 온전치 않다.
그러니까 점토같은 팔도 이상하고.
머리가 뜨거워지다 못해 과부하가 걸린 듯하다. 시체처럼 늘어진다. 눈알은 허공을 향한다.
:어려움 성공.
흔들리는 시야 너머로 테이블 위의 약 이 보인다.
카일이 말한 것이 진실인 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지금 걸 수 있는 것도 없다.

세지 않게,
짧고 날카로운 송곳니의 자국이 남을 정도로만.
무어라 반응하기 전에, "매튜, 좋아해."
"너도 알고 있겠지만,"
"알아도 들어."



어깨를 바짝 붙들고 껴안은 채 뒷덜미에 코를 박는다. "널 정말 좋아해."
목뼈가 끝나는 부분, 그 언저리에 입을 맞춘 채 뭉개진 발음으로 웅얼댄다.
"...모르겠어, 매튜?"
붉어진 얼굴 위로 눈이 멍해진다.
"네가 내 갈라테이아야."

테이블 위에 손을 뻗어 약통을 집어온다..
알약을 하나 꺼내서 자기 혀에 올려놓는다.
카일?의 뺨을 감싸쥔다.
아, 맞다. 알약을 볼 옆에 밀어 놓고 묻는다.
"키스하고 싶은데 해도 돼?" 시발놈의 허락을 구해본다.

질척이는 소리와 함께 이 놈의 성기를 빼낸다.
옆으로 철퍽 굴러 떨어진다.
패인 볼 위로 보조개가 올라온다.
뼈만 남은 손가락을 매튜를 향해 멕아리 없이 까딱까딱 움직인다.
"너, 너."

"너 매튜 아니지."
"이 가짜야."

볼에 알약때문에 좀 웅얼거리는 발음으로,
"된다는 거야, 안된다는거야."

웃음기가 조금 가신 얼굴로,
"안 돼."

"정말로?"

눈이 다시금 반쯤 감긴다.



입안에 있던 알약을 뱉어서 버리고 옷매무새나 고친다.




얇은 틈새로 흰자만 남긴 채 눈꺼풀을 그대로 부르르 떤다.
이마를 턱 짚는다.
:잘그랑, 소리가 난다.
카일의 재킷에서 나는 소리 같다. 쇠붙이가 부딪히는 소리.

카일?의 재킷을 젖혀 꺼낸다.
:'열쇠꾸러미'를 획득한다.

:재킷을 젖힐 동안 카일은 얼굴에 손을 얹은 채 미동도 않는다.

열쇠 꾸러미를 들고 일어선다.
컨디션이 다시 나빠졌지만 무시한다.
:일어서자마자 휘청인다. 중심이 잘 잡히지 않는다.
물끄러미 내려다보면 연이어 짓밟혔던 발목이 거의 점토마냥 뭉개져있다.
무려 구두 발자국이 남아있다.
경이로운 일이다.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던 중 절그럭, 열쇠가 바닥에 떨어지며 작은 소음을 만들어 낸다.
다시 주워들면 어느새 지하실 문 바로 앞에 와 있다.
열쇠는 4개고 문고리는 하나다.
오늘의 운세 판정을 해볼까.

카드 넘기듯이 열쇠를 네개를 넘기다가 하나 골라서 문고리에 꽂아 본다.
:실패.
음, 이건 아니었다.
다시 운 판정.

그럼 옆에거는?
:열쇠가 맞물려 달그락댄다. 뻑뻑해서 잘 빠지지도 않는다. 남은 것은 두 개다. 마지막 운 판정.

:어디 쓰는 것들일까?

짜증낸다.
어디에 쓰는 것들일까.
:열쇠가 돌아간다. 얼핏 등 뒤에서 나지막한 신음소리가 들린다.

지하실에 있을까?
문을 열어 안쪽을 살펴본다.
문을 열자 아래로 이어지는 계단이 보인다.
계단 아래는 어둡다.
아래로 내려갈수록 빗소리가 작아지고 간격이 좁은 벽 사이엔 숨소리만 어지럽게 울려퍼진다.

앉아서 발목과 팔의 벗겨진 점토... 같은 것을 주물러서 원래 모양대로 펴놓는다.
"좋아."
계단을 내려가본다.
:발걸음을 옮길 때 마다 불분명한 목소리가 허공에 울려퍼진다.
그 목소리는 어쩐지 길을 인도하는 것만 같다.
목소리를 따라 아래까지 내려오면,
문이 하나 더 있다.
마찬가지로 열리지 않는다.
아, 이래서...

주머니에서 주섬주섬 열쇠꾸러미를 찾는다.
아까 쓴 열쇠가 이거였나? 그럼 이건 아닐거고....
이거겠지?
:아니었다.

짜증낸다.
목소리가 공허하게 울린다. 시끄럽다...
다음 열쇠....
:둘 다 아니었다. 남은 열쇠를 꽂자...

:문이 열린다.
HO. 지하실 공개.
문이 열리면 안의 차가운 공기가 훅 느껴진다.
지하실에 들어오자마자 느낀 한기는 여기서 나왔던 건가보다.
공기 속의 비릿한 냄새도 함께 코를 찌르며 달려든다.
벽을 매만지면 스위치 같은 것이 만져진다.

:파란 백열등이 켜진다. 낮은 조도지만 이토록 어두운 공간에서는 충분히 밝게 느껴진다.
시선이 닿는 곳은 바닥에 모로 누워있는 누군가의 시신.
아는 얼굴이다.
당신을 언덕으로 이끌었던 여자. 니디아 레테가 두 눈을 뜬 채 바닥에 누워있다.
하얀 옷이 피로 범벅이 되어 있다.
:그 혈흔의 중심을 따라가면... 배다.
짧은 나이프로 십여번을 마구 찔린 듯한 배로부터 검붉은 피가 흘러나온다.
왜 저기에 저렇게 죽어 있는 걸까.
매만졌던 손발목이 다시 시큰거린다.
이성 판정 1/1D2
2
감정폭주
감정폭주━━━━━━━━━━━━━━━━━━━평정을 잃고 스스로의 감정을 제어할 수 없게 된다. 울거나, 웃거나, 화를 내거나, 폭력적인 반응을 보인다. 세션이 종료될 때 까지 대인기능 및 심리학 판정을 시도할 수 없으며, 근력 판정에 보너스 주사위가 발생한다.

'이 사람이 왜?' 반박자 늦게 이 사람이 죽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뺨을 두드리자 마치 살아있는 양 고개가 스르륵 돌아가 땅에 떨어진다.
처음부터 혈색이 없던 얼굴은 지금도 꼭 다를 바가 없다.
깊은 곳에서부터 신물이 올라온다.
관찰 판정이 가능하다.
:시신은 죽은 지 몇 시간 되지 않아 보인다. 적어도 오늘 새벽. 난도질당한 복부로부터 흘러나와 고인 피가 아직 묽다.
시체의 옷깃 아래 피에 젖은 손수건이 보인다.

:접힌 손수건을 펼쳐본다. 본디 하늘색이었을 자수가 수놓인 손수건에 손이 축축하게 물든다.
피로 물든 손수건에는 번진 잉크로 한 문장의 문구가 적혀 있다.

'무슨 답?'
자신에게 남긴 말인가?
:그 순간, 마치 그녀가 말해주는 양 목소리가 귀를 스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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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고...

크게 뜨인 눈을 굴려 주변을 살핀다.
아까부터 치미는 감정이 어떤 종류인지 자각한다.
지금 신뢰할 만한 사람은 없고, 믿을 구석인 신체는 온전치가 않다.
레테를 죽인 이가 누구일지 떠올리는 것은 어렵지 않다.
소리에 주의하며 지하실을 더 둘러본다.

:책상은 오래되었지만 잘 관리된 목재로 만들어져 있다. 표면에는 미세한 긁힌 자국이 여럿 있고, 군데군데 손때가 묻어 시간이 만든 광택을 띠고 있다. 어두운 지하실의 희미한 불빛 아래, 책상 위에는 두 개의 이질적인 물건이 나란히 놓여 있다.
가죽 케이스 안에 든 6발 탄환 세트가 눈에 띈다. 황동 탄피는 빛을 받아 은은하게 반짝이고, 탄두는 차갑고 묵직한 느낌을 준다. 깔끔하게 정렬된 탄환들은 아직 어떤 총에도 장전되지 않은 채 주인의 손길을 기다리는 듯하다.
그 옆에는 새 모양의 인형이 자리 잡고 있다. 어두운 나무로 조각된 작은 새 인형은 한쪽 날개를 살짝 펼친 자세를 하고 있으며, 그 표면에는 정교한 세공이 더해져 있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새의 눈이 비정상적으로 깊게 파여 있어, 마치 끝없는 구멍처럼 보인다. 조각된 깃털 사이사이에는 오래된 먼지가 끼어 있어, 오랜 세월 이곳에 있었던 듯한 인상을 준다.

하나 둘... 여섯발.
총알의 갯수를 세어두고 기억해놓는다.
새 모양의 인형을 들어 살펴본다. 거실 진열장에서 비슷한 인형을 본 기억이 난다.
왜 그렇게 방심하고 있었을까?
생각하며 인형을 확인한다.
:인형의 등 위에는 작은 태엽이 보인다.

:이렇게 작은 조각임에도 태엽은 끝도 없이 돌아간다. 끼릭끼릭,
금속 부품이 맞물리는 조용한 마찰음이 들려오고, 이어서 지하실의 정적을 깨는 소리가 울려 퍼진다.
그 소리는 이 황량한 지하실에는 어울리지 않지만 당신에게는 익숙한 소리다.
해가 떠오르는 아침, 숲 속의 저택 침대에서나 들을 법한 청량한 새소리.
매일 아침 들었던 소리다.
어설프게 흉내낸 것이 아니라 진짜 새가 내는 소리에 가깝다.

"웃기지도 않네." 입매가 딱딱하게 굳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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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침하고 푸르스름한 지하실에 정말, 웃기지도 않는 새소리가 들린다.
인형을 내려놓는다.
:짧은 소절을 반복하는 동안, 지하실의 공기가 더욱 무거워지는 듯하다. 태엽이 완전히 풀리고 마지막 음이 공중에 맴돈 뒤, 다시 적막이 찾아온다. 하지만 그 순간에도 어딘가에서 아직도 그 소리가 희미하게 울리고 있는 것만 같다. 마치 이 지하실 위 어딘가에서, 혹은 벽 너머에서 그 소리에 일어나는 누군가 있을 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착각이 들 정도로.

그렇지 않은가?그게 문제다. 총알이 여섯발이나 장전된 총을 들고 있는데도 불안하고 초조하다.
아닌게 아니라, 자신이 여기 있는 것도 그새끼가 집안을 돌아다니게 내버려둬서 가능한 것 아니던가.
작업대를 살펴본다.
:관심이 없었다. 매일 자신을 먼저 재우는 것에도, 저를 재우고 밤에 무엇을 하는 지에도. 손을 메운 상흔들, 눈가에 드러워지는 그림자, 붉게 물들어 있는 장갑, 그리고...
작업대에 눈길을 두는 순간 백열등이 몇 차례 깜빡인다.
깜빡이는 불빛을 무언가가 반사하고 있다.
조각칼 같은 것들이 여러개 어지럽게 널려있다. 붉은 색으로 물든 헝겊 몇 개가 구겨진 채로 놓여 있으며 헝겊 근처에는 늘어진 고무 같은 것이 있다.

고무를 만져본다.
:손가락 아래 미끄러진다. 고무라 생각했던 것의 뒷면은 검붉은 진피.
이것은 고무가 아니라 상한 살점이다.
두께로 보아 인간의 것은 아닌...
아마도 돼지의 살점인 것 같다.
냄새가 그닥 좋지 않다.
작업대의 사이즈는 보통의 성인이 눕기에 충분한 정도의 크기이다.
:어쩌면..

어쩌면...?
:철퍽, 소리와 함께 상한 살점이 벽에 부딪혀 핏자국을 남기며 주르륵 미끄러진다.

뒤에 아무 생각도 떠오르지 않는다.
떨어진 돼지의 살점 옆에 자기 손을 가져다 대본다.
'색이 비슷한가...?'
:살점은 상한지 오래인듯 이미 거뭇거뭇하다... 살아있는 돼지의 거죽과도 비슷한 색이 아니다.

아닌 것 같다. 다행이다.
돼지의 살점 옆에 구부정하게 있다가 무언가를 잡고 일어선다.
무심코 돌아보니 잡동사니들이 놓여있다.
놓여있는 것을 확인한다.


:한쪽 구석을 메운 물건들은… 부서진 가구와 일정한 크기로 잘라낸 나무판들, 청소도구, 최근 사용한 흔적이 없는 오래 된 가전제품과 먼지가 내려앉은 책들이다.
관찰 판정.
'빗자루가 여기 있었구나.'
물건 더미를 옆으로 밀어낸다.
:실패. 잡동사니나 가전제품들은 얼핏 성한 것이 없어 보인다.

:몇 십년 전 쯤 썼을 것 같은 그런 때깔들이다. 물건 더미를 밀어내면 책에 올라 앉은 먼지가 휘날린다.
경 과Progress 라는 글씨가 박힌 가죽표지가 눈에 들어온다.
먼지가 한가득이라 재채기가 나온다.
체력 -1.

눈에 띄는 책을 집어든다.
앞장부터 천천히 넘겨본다.
:책을 집어 들면 표지는 마치 축축한 살갗처럼 거칠고 불쾌한 감촉을 남긴다.
검은색으로 변색된 모서리와 군데군데 남아 있는 얼룩은 오랜 세월을 견뎌온 물건임을 말해준다. 그러나...
손에 들자 마치 살아 있는 것 마냥, 들린 무게가 미묘하게 변하는 듯한 착각이 들게 한다.
천천히 페이지를 넘기자,
첫 페이지에는 "1장" 이라는 커다란 문구가 보인다.
그러나 다음 페이지로 넘기면, 안쪽에는 사람의 손으로 쓴 것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글씨가 가득하다. 검은 잉크로 휘갈겨진 문장들은 서로 겹쳐지고 뒤엉켜 있었으며, 어떤 것은 너무 빽빽하게 쓰여 있어 마치 종이 자체가 먹물에 잠긴 듯 보인다.
:글자들은 일정한 흐름을 따르지 않고, 어떤 것은 거꾸로 쓰였으며, 또 어떤 것은 페이지를 벗어나 책의 모서리를 타고 기어오르듯 이어져 있다..
알아볼 수 없는 "1장" 을 몇 페이지 넘기고 나면,
"2장" 이라는 이름의 깨끗한 페이지가 나온다.
그 이후로는 다시금 사람이 썼다고도, 무언가의 기록이라고도 믿을 수 없는 검은 글자들이 가득 찬 페이지들이 나온다. ... 더 넘겨볼까?

빠르게 책장을 넘겨본다.
:"2장"을 모두 넘기면, 다시 "1장" 이라고 쓰인 페이지가 나온다.

고개가 옆으로 기울어진다. 책장을 계속 넘겨본다.
:넘기다보면 이번에는 2장을 넘어 3장이 나온다.
그러나 까만 글씨로 가득한 페이지를 넘기면 다시금 1장으로 돌아가버리고 만다.
:손이 빠르게 페이지를 넘기다보면 수많은 1장과 2장, 3장이 반복된다.
HO. 검은 책 공개




:마지막으로 끝나는 "5장"은 다른 페이지들의 분량에 비하면 2/3 가량이 작성되어 있다.
눈을 조금이라도 오래 두면, 글자들이 서서히 꿈틀거리며 형태를 바꾸며 아래로 스스로를 써내려가는 듯한 착각이 든다.

작업대 위에 내려놓는다.
:책을 덮으려 하자 종이가 스스로 몸부림치듯 희미한 바스락거림이 들려온다.

작업대 위에 올려놓고 총을 한발 갈긴다.
:탕, 소리가 지하실에 울리는 순간,
듣기 판정.
충동적으로 총알을 하나 낭비하고서 숨을 몰아쉰다.
:실패.
하지만 놓칠 수가 없다.
지하실 위쪽에서 무언가가 움직이는 소리가 들린다.
미세한 마찰음 ,
구두 밑창이 돌계단을 치는 소리.
계단 첫 번째 단을 밟는, 뚝 하는 소리가 어둠 속을 찢고 내려온다.

:This message has been hidden.
심장이 세차게 뛰기 시작한다. 이런 입지가 된 것이 기분이 좋진 않다. 하지만 하나 하나 따질 겨를이 없다.
민첩 판정.

매튜 골드맨
bonus / penalty
8
급하게 움직이다가 작업대 모서리에 허벅지를 박는다.
:약을 먹일 것을 그랬나.
큰 소리와 함께 작업대 위에 있던 칼들이 챙그랑, 요란한 소리를 내며 쏟아진다. 문을 향해 달려가 손을 뻗어 문고리를 움켜쥐는 순간,
쾅! 문이 거칠게 밀려 열린다.
한 발 늦었다.
손에 느껴지는 충격과 함께 중심이 흐트러진다.

"젠장."
중얼댄다. 약간 막막한 기분으로 문을 열고 온 사람을 확인한다.
:카일이다.

:희미한 불빛 아래 축축하게 젖은 얼굴 거죽이 번들거린다. 모세혈관이 터진 듯 붉어진 눈이 당신을 미동 없이 응시한다.

:언뜻보면 약간 어안이 벙벙해뵈는 얼굴처럼 보이기도 한다.
가끔 저래 보일 때가 있을 뿐임을 당신은 안다.

"자는 줄 알았는데."
"깼나? 아니면, 안 자고 있었나?"

한쪽 입꼬리가 슥 올라간다. 보조개가 없는 쪽이다. "내가 매너가 없었지."

"뭐?"

:카일의 얼굴은 얼핏 차갑게 가라앉아 있어 뵈나 여전히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했다는 사실도, 알 수 있다.
내민 손 아래, 우리 사이에는 죽은 여자의 시체가 놓여 있다.
카일의 약혼자의. 임신했냐는 말에 부정은 않았지.


니디아 레테의 죽은 눈과 마주쳤다는 착각이 든다.
손은 잡지 않고 묻는다. "네가 그런거야?"
니디아 레테의 죽음에 대해 묻는다.

:구둣발이 여자의 피를 밟는다.
한 치 앞으로 다가오자 백열등의 푸른 불빛이 그늘에 가려있던 얼굴에 드리운다.
며칠 묵은 보랏빛의 멍 아래 왼쪽 얼굴 전체가 불그스름하게 부어있다.

:부정하는 말투라기 보다는,
왜 묻느냐는 투다.


여자를 본다.
"...화나서 그랬어."
후회스럽다는 양 말한다.
"일이 내 마음대로 풀리지가 않아서, 매튜."
"화풀이였어."

"이 여자를 만나고 제대로 풀린 일이 없어."
"화나서 그랬어." 반복한다.
"화가 나면 실수할 수도 있잖나."
눈동자가 매튜로 옮겨간다. "그렇지."

"카일."
손가락으로 머리카락 속을 휘젓는다.
"전부 그럴 수 있다고 말해달라는 건가?"
"내가 그런 실수까지 용서해야 하나? 응?
못할 말이라도 하는 듯, 거친 말투로. "내가 너를 좋아하고 아낀다는 이유로?"


알아서 일어선다.
"카일은 어디에 있어?"

"다시 볼 일 없을 거야."
"이건 진짜야, 매튜."
확고한 투다.
그리고는 당신에게 한 발 다가선다.
"아, 좋아하고 아끼기는. 달래고 싶은 마음은 이해하지만,"

"난 충분히 침착해."
"그래서, 탄환은 들었고?"


"쥐라도 잡았나?"

뒤쪽의 작업대 올려둔, 구멍난 책을 카일에게 민다.

:본 적 없는 표정이 있을 줄이야, 싶어지는 얼굴이다.

"매튜. 방법이 있을 거야." 낙관적인 투로 말한다.
"우선..."
손을 다시금 내민다.
"줘."
허리춤의 칼을 눈짓한다.

"쏘려면 쏘고."
"아니면 둘 다 내 놔. "
마지막 말은 공격성이 다분히 묻어있다.
:카일의 손이 제 등뒤로 가는 것이 보인다.
문 구석지에 길다란 각목이 눈에 띈다.
어딘지 익숙한 모양새다.

내밀어진 손이 아니라 위쪽의 팔을 잡아와 당긴다.
카일의 턱밑에 총구를 들이밀고서 입을 연다.
"아까부터 계속, 계속..."
"내가 뭘 잘못했다고 이러는거야?"
목소리가 떨려나온다.

이해가 안된다.

"내가 언제 내가 아니라고 했나."
"네 믿음이 그렇다는 거지."
"매튜... ."
"쏘지마."
"그 칼 내게 줘, 부탁이야."




"질문에 질문으로 답하지 마."

"아니면 내가 날 오인하는 것일 수도 있지."
"아까는 화가 났는데, 지금은 모르겠어."
"극도의 증오감이라고 해야하나."
얼굴을 일그러뜨리면서 빠르게 중얼댄다. "분노가 치밀어 올라서 네 목을 마구 찌르고, 양손으로 올라오는 피를 쥐어짜내면서 키스를 하고, 네 시체를 박으면서 씹질하고 싶다가도, 그러다 조금 지나고나니 이 상황이, 네가 걸레가 된 다리짝을 끌고 여기까지 내려와서 여길 이잡듯 뒤지며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떠올리니 웃기기만하고, 그러다보니 웃음을 못참겠던데." 표정이 살살 풀리기 시작한다.
"그러다 다시 정신을 차리고 보니 극심히 슬프고 괴로웠어. 가슴이 날붙이로 마구 난도질을 당하는 것만 같았다고. 그 다음으로는 수치스러웠어. 부끄러움이 극에 달해 내 목을 베어서 절벽 아래로 던져버리고 싶었어. 이대로 뒈져도 아무도 내 얼굴을 못 보게 말야."

냉정을 되찾은 얼굴이다.
"지금은 아무 생각이 없어."
"매튜, 총 내려."
허심탄회하게 고백하고 말한다.
"3 초 안에 안 내리면 내가 널 죽일 거야."
이성 감소 2
멍하게 카일이 쏟아낸 말을 듣는다.
우선 마지막 말에 대답하기를. "셋 세보던가."

"이."
뱉는 순간 매튜를 향해 각목을 휘두른다.

:민첩 판정.
매튜 골드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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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긴장한 손가락의 근육이 반사적으로 방아쇠를 당긴다.

:탕, 폐쇄된 지하실을 총소리가 울린다.
어깨에 부서지는 감각을 느끼는 순간 셔츠에 피가 흩뿌려진다.
휘청이는 시야 앞으로 순간적으로 쓰러지는 카일의 모습이 보인다.





소리지른다.

거기에 맞대고 악을 쓰듯 소리지른다.
그게 그렇게 중요하냐는 말은 차마 나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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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다.

총을 거꾸로 쥐고 총신으로 카일의 얼굴을 내려친다.
오른쪽 얼굴.

웅크린 어깨로 팔을 뻗는다. 매튜의 발목을 잡는다.
"또 뭐 하려고, 등대?!" 알고 있다는 투로 소릴 지른다.

"손 안놔?"
이내 기가 차다는 표정으로 피가 새는 옆구리를 무릎으로 누른다.
통증은 잠시 참는다. 총은 탄창 채로 분리해서 서로 반대방향으로 던진다.


이렇게 소리지르고 그러면 마음 약해지는 걸 알고 이러는 것 같다.
"어떻게 해달라고?"
"날붙이로 난도질하고, 목을 베어달라고?"
비명을 지르는 카일의 얼굴을 주먹으로 내려친다.
한 두세번 정도.

"으흐, 으흑!" 반대쪽 광대가 땅에 부딪히는 순간마다 위로 돌아간 눈을 하곤 신음을 차지게 내뱉는다.


"아학...!" 실핏줄이 다 터진 흰눈을 뜬다. 눈 앞이 흔들린다. 입에 고인 피를 매튜의 얼굴을 향해 왈칵 뱉는다.


"별로 아프지도 않잖아."

쇠붙이에 이마가 찢어진다. 골이 울린다. 순간적으로 시야가 세개로 쪼개지며 속이 뒤집어진다.


그러니까 제 목소리가 뭐라고 뱉냐면.
"아, 아파... ."
답하듯, 항의하듯, 사정하듯 베베 꼬인 혀가 흐느적댄다.

어색한지 몇 번이나 고쳐쥔다.
카일의 재킷을 열어젖힌다.
"나도, 카일 씨발, 존나게 아프더라."






끌어당겨져 준다.


고개를 조금 틀어 입술이 맞물리게 한다.

바르작대며 거의 동물적으로 나이프를 쥔 손으로 손이 향한다.
이 새끼 봐라.
입술을 맞대고 킥킥 웃는다.
이미 피맛이 나는 혀를 깨문다.
드드득...


옆으로 굴러 드러눕는다.
진이 빠진다.
:옆으로 구르는 순간 머리가 무언가에 툭 부딪힌다.
고개를 돌리면 이 쪽을 보고 있는 니디아 레테와 눈이 마주친다.
아, 맞다.
시체를 옆에 두고 그 쪽을 살해한 약혼남이랑 뭐하고 있던 거지.
머리 속에 여러 목소리가 섞여 울려퍼진다. 그녀의 목소리가 아니라.
:어디서 들었던 목소린가. 눈살이 살짝 찌푸려진다.
유리구슬 같은 눈들이 당신을 본다.
본능적으로 말한다. 그래, 돌아가야 한다.
그녀는 등대에 답이 있다고 했다.
비가 길을 가르쳐주리라 말했다.
옆에선 카일이 입을 틀어막은 채 상체를 끌어올리려 하고 있다. 손뼈 사이로 핏물이 줄줄 새어나온다. 그의 낯빛은 몇 시간 전 죽은 시체와 거진 다를 바가 없다.
:더 이상 아무것도 당신을 막을 수 없다!
당신의 눈 앞에는 아직 확인해 본 적 없는 문이 있다.
당신은 동물적인 직관과 함께 그것이 무언가의 길임을 안다.

휘청이며 일어나 문을 연다.

다시 한 번 땅을 기어 발목을 잡으려 한다.
잡았다고 생각하는데 매튜가 문을 열고 나간다.
그러고보면 작업대에 기댄 채 한 톨도 움직이지 않았다.
잡았다고 생각한 것도 착각이었다.
안 된다는 말도 머리 속으로만 한 것 같다.

말했던 것 같기도?
:카일은 눈을 희뜬채 작업대에 늘어져 기대있다. 저를 끈질기게 따라오는 시선인데, 대답은 없다.
손이 가볍게 떨린다.
둘 모두 그렇다.
문을 열면 저택의 뒤로 향하는 계단이 바로 이어져 있다.

:탁 막힌 싸한 공기가 숲의 서늘한 공기로 서서히 대체되어 간다.
머리 속을 점철하고 있던 안개가 서서히 걷혀간다.
일시적 광기, 불신 해제.
계단을 오르는데 문득 그런 생각이 스친다.
후회할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어차피 후회는 하게되어 있다.
:기왕할 후회라면 등대에 다녀와서 해도 늦지 않을 것이다.
적어도 그는 당신에게 아무 이야기도 해주지 않을 것이다.
계단을 천천히 오르며,
무거운 것은 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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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실 위로 올라오면 빗소리가 사방에서 와락 몰려온다.
비가 많이 오고 있지만 그칠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출발할까, 행선지는 등대이다.

걸음을 내딛는다.
:몸이 조금씩 젖는다.
어쩔 수 없지.
젖은 땅을 딛고 천천히 등대 쪽으로 걷는다.
차가운 물방울이 정수리와 어깨에 닿아 마구 튄다.
숨의 온도가 점차 낮아진다.

:차츰 무거워지는 몸을 이끌고 숲 속을 걷고 걷는다.
어깨에 무언가를 이고 가는 무게감이다.
구두가 물 웅덩이를 찰박 박차면 처음 이 곳에서 눈 떴던 순간을 떠올린다.
느닷 없이 던진 젠가의 방향으로 날아가던 카일이 떠오른다.
계란 껍질이 소소히 박혀 있던 정체 불명의 서니 사이드업도, 몸에 닿던 마른 헝겊의 감촉도 생각난다.
등대에 도착해 답을 얻은 후 당신은 지하실로 돌아올 것이다.

나무들에 가려져 저택의 모습은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등대를 향해 다시 걷는다.


:숲의 끄트머리 즈음, 바다와 맞닿는 부근에 희미한 조형이 보인다.
그곳에 등대가 있다.
발바닥이 진흙이 된 땅에 닿을 때 마다 몸의 힘이 빠져나가는 것은 착각이 아닌 듯 하다.
숨이 점차 가빠지고 오한이 든다.
눈꺼풀이 무겁고 눈가가 시큰하다.
금방이라도 눈이 감길 것 같다. .. 그러다간,
:민첩 판정.
매튜 골드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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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번쩍, 정신이 든다.
순간적으로 잠에 들 뻔 하다 나무에 머리를 박을 뻔 했다.
가지 틈새로 아까보다 훨씬 가까워진 등대가 보인다.

얼굴을 적시는 빗물을 닦고 등대로 향하는 걸음을 재촉한다.
:구두가 질질 이끌린다.
발걸음이 점점 느려진다.
왜 이렇게 기력이 없을까. 마치 이 숲의 모든 것이 몸을 아래로,
뒷덜미를 붙들고 나락으로 잡아 끄는 것 같다.
차가운 빗물이 몸에 닿을 때마다 판단이 흐려진다.
그리곤... 어느새 눈 앞의 것들이 높아지기 시작하다,
:쿵 ,
젖은 흙바닥에 그대로 얼굴을 박고 만다.
세상이 흔들거릴 정도로 아프게.
체력 -1D2


꿈이라도 꾸는 것처럼 멍해지는 정신을 다잡고 몸을 일으키려 한다.
:입안에 넣은 손가락이 덜 구운 진흙마냥... 깨물린다.
무른 무언가를 씹은 마냥 잇자국이 그대로 난다.
다리가 녹아내리 듯 힘이 없다.
넘어지는 중 땅에 쓸린 듯 면이 찢어져 드러난 무릎이 우글우글 어그러져 있다.
뼈가 녹는 느낌이다.
:온 몸의 기운이 녹아내렸는지 상체를 일으킬 수가 없고 바닥에 반이나 처박힌 입술을 움직거려 보아도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간신히 몸을 반대로 돌리고 눕자 얼굴 위로 비가 사정없이 쏟아진다.
비를 맞지 말라고 했는데.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카일이 설득을 썩 잘한 것도 아니었다.

적어도 등대는 갈 수 있을 줄 알았다.
눈만 위로 떠서 등대를 바라본다.
:정신력 판정.
:실패.
마음에 없는 탓을 하고 있다보면,
불현듯 그런 생각이 스친다.
거실 위에 덜렁 남겨진 쪽지.
종을 울려도 오지 않는 발소리.
나뭇잎을 때리는 빗소리를 타고 어쩐지 목소리가 들려온 것만 같다.
:목소리는 희미한 한편 분명하다.
줄곧 들리는 머리 속 목소리가 아닌 현실에서 들리는 목소리다.
매튜,
그렇게 부른 듯 하다.
이 곳에 울릴 종은 없다.
하지만...
:땅에 닿은 허리춤을 무언가가 눌러온다.
권총이다.
탄환은 다섯 발이 남았다.
매튜,
다시금 목소리가 들려온다.
희미하지만, 분명 소리를 지르고 있다.

손가락이 젖은 바닥을 기어가 허리춤으로 향한다.
총을 툭툭 밀어 꺼낸다.
총을 들어보려 하지만 물먹은 듯한 팔이 움직이지 않는다. 권총을 바닥에 둔 상태로, 손가락으로 방아쇠를 당긴다.
:탕,
총 소리가 숲 속을 울린다.
목소리가 조용해진다.
총알은 네 발이 남았다.

절망하려는 마음을 다잡고, 다시 방아쇠를 당긴다.
:탕, 탕,
총소리가 흐릿하게 빗줄기를 뚫고 퍼져 나간다.
방아쇠를 당기고, 또 당기다 보면 어느새 철컥, 소리가 난다.
머리 위에 그림자가 진다.
비릿한 무언가 입가에 툭 떨어진다.
가까이서 본 카일은 얼굴이 잔뜩 부어있다.
:형체를 알아보기가 힘들어 웃음이 나올 지경이다.
그는 입 안에 뭉친 넥타이를 물고 있다.
그 때문에 더 부어보이는 지도 모르겠다.

나한테 고마워 해야 해.

팔로 끌어안아 올리려 한다.
:떨어뜨린다.

항의한다.
:신음이 입밖으로 흘러나온다.

다시 시도한다.
옆구리를 짚던 손을 떼곤 양손으로 끙끙대며 끌어올린다.
힘을 줄 때 마다 물에 섞여 투명해진 핏물이 입에서 줄줄 나온다.
빗물에 젖은 얼굴에 땀도 줄줄 나온다. "으... ... ." 넥타이 밖으로 신음이 흘러나온다.

:손에서 무언가 미끄러져 툭 떨어진다.
권총이 흙에 파묻힌다.

"기다리라니까..."
웅얼댄다.

매우 진지한 표정이다.
반은 부축하고 반은 질질 끌고 가는데 온 집중을 다 하고 있다.

"고마워."
웅얼웅얼...
민망함과 미안함에 웅얼댄다.

:멀리 숲속이 끝나는 지점 즈음, 허연 인영이 어른댄다.
희끄무레한 실루엣은 마치 비와 함께 태어난 듯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있다.
피에 물들었을 옷자락이 하얗게 일렁이며 보이지 않는 물결에 떠밀리는 듯 부드럽게 흔들린다.

무어라 말하려다 말문이 막히고,
매튜에게 눈짓한다.
넥타이를 빼달라.



레테를 보고 한 말이었다.


혼란스러워한다.




:피에 젖은 넥타이가 무거운 소리와 함께 땅에 떨어진다.
인영이 두 사람을 빤히 쳐다본다.

눈을 뜨고 레테를 본다.
날숨을 내뱉으며 말도 함께 내뱉는다.
"...포기할게."
:인영이 묻는다.

그리곤 말한다.
"길 좀 비켜 줘."

:그녀는 아름다운 미소를 마지막으로 비와 안개속으로 녹아내린다.
카일은 다시금 발을 옮기기 시작한다.
그에게 체온이랄 것을 느낀 적은 없는데, 차가운 빗속에서 누워있었던 지금은 느낀다.
맞닿은 몸의 온도가 느껴진다.
잃어버렸던 생명력이 차츰 되돌아오는 것만 같다.
갈라지던 목소리는 등대에 가까워질 수록 원래대로 돌아간다.

"잠시만, 잠시만."
"뭘 포기한다는 거야?"
"지하실에 누워있던 사람은 대체 누구고."

"알려주려고 가고 있어."

카일을 따라간다.
:질척한 바닥을 벗어나면 등대 구조물 덕에 비를 피할 수 있다. 그래봐야 물에 젖은 생쥐꼴은 여전하다.
그는 초연한 얼굴로 등대의 문을 연다.
원래부터 열려있었는 지 문이 안으로 쑥 열린다.
어두컴컴한 내부에선 좋지 않은 냄새가 난다.
아까 맡은 것만 같은....
:달칵.
천장의 불이 몇 차례 깜박거리다 켜진다.
코를 틀어막을 수 밖에 없는 악취가 머리를 아프게 한다.
안 쪽엔 배가 갈린 돼지 시체 여러 개가 천장에 매달려 있다.
바닥엔 말라붙은 피가, 그 근처에 아직 고여있는 피가, 내장과 살점이 어지럽게 널려 있다.

"내가 여기서 뭘 하고 있었을 것 같나?"
장갑을 하나 둘 벗어 바닥에 던져 놓는다.

"돼지 손질?"
자신없게 대답한다.


여전히 얼떨떨하고 멍한 표정이다.
:밖으로 나와 문을 닫으며 카일은 당신의 옆에 앉는다.
입을 다문 그의 옆얼굴에서 묘한 고집스러움이 묻어나온다.

"첫 날부터 말 실수를 해버렸어."
"미안하다만, 이제 슬슬 내게도 보험이 필요했어."
"너와 다신 보지 않을 변명 같은 것 말야."
:빗소리가 귀를 때린다.
바닥을 적시는 물방울들의 소리 속에 그의 목소리가 뭉개진다.

"레테는 내가 한 말에 배역을 맡고 어울려줬을 뿐이야."

뭐라 대답할 말을 찾는다.

매튜를 가리킨다.
"슬 눈치 챘겠으나,"
"나랑 섹스한 이 건 네 몸이 아냐."
고민하듯 입을 슬쩍 가린다. "그러니까..."
"난 그게 무슨 느낌인 지 모를 거란 말이지. 영영."

그건 눈치 챘다. 고민하며 묻는다.
"왜 나를 보기 싫은 건데?"

"네 영혼이 이 곳을 방황하는 동안 네 진짜 몸은 한갓지게 1인실 침대에 누워 있다고."

"여기가 사후세계라고 말하는 거야?"
"너도 죽었어?"

"혹자는 림보라고들 한다더군. 들어봤나?"


다른 소리로 흘러간다.

"너랑 보는 건 좋아해." 아무렇지도 않게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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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번 같이 봤잖아?"

"아냐, 갑자기 엄마 생각이 났어."
고개를 돌린다.
"레테가 말했어."
"내가 이 곳에 잠깐 와 널 살릴 수 있다고."
"왜 굳이 나였는 지는 모르겠어."

"그리고 솔직히 재밌어 보였어."
허공을 보며 얼핏 기분 좋아뵈는 미소를 짓는다.
"일 주일이야."


"다만 조건이 있어."
"넌 스스로가 조각이라는 사실을 몰라야 해."
"알게되면, 음," 단어가 생각나지 않는 듯 한 쪽 눈을 찡그린다. "싱크로가 떨어지거든. 육체와 영혼의."
"쉬워 보였어."
"처음은 이틀 만에 네가 비를 맞았고,"

"세 번째로는 밤 낮을 바꿔서 생활해봤는데 실패했고,"
"네 번째에는 아무 것도 안하고 너랑 있어보기도 했고,"
"다섯 번째는 처음으로 닷새를 버텼는데,"
"아, 미안. 그 때 내가 널 각목으로 패서 지하실에 가뒀어."
"여섯 번째도 그렇게했고, 닷새를 버텼지." 그 뒤로는 헷갈린다는 듯 손가락을 샌다.

"희망이 보였다고."
손가락을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곱, 더 접어보다 만다.
"그 기간 동안 너와 함께 지내며 너에 대해 알게된 새로운 사실이 있었어."


"나는 네가 고분고분한 성격인 줄 알았어. 나에게도 그렇고, 다른 사람에게 하는 것도 그렇고, 카포에게도 그렇고..."
"하지만 음, 너는 아니야. 넌 안 돼."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다.
"레오네는 언젠가 된통 피를 볼 거야."

"고생 좀 하셨겠는걸."
"그걸 전부 기억 못하는 게 아쉽네."
"재밌었을 것 같은데..." 하다가 말한다. "그건 이번이 처음이었지?"
그거...


짧게 말한다.

고개를 돌린다.
머리를 벅벅 긁는다. 매튜처럼.
"사실은 ㅡ "
말꼬리를 늘리며 슬쩍 반응을 지켜본다.

"그래, 내가 가만히 있었을 리 없지."
궁시렁대기 시작한다.

"걱정 마, 매튜. 네 행실은 네 마음의 더러운 냄새를 맡고 날라온 똥파리도 주르르 미끄러질 만큼 흠결 없어."

"너도 뭔가 좀 까먹은 거 아냐?"



궁금했던 것을 묻는다.
그랬나 본데? 반응을 보니.

"구체적으로 생각한 건 아니고..." 말끝을 흐린다.
"어떨지 궁금했던 정도?" 살짝 웃으며 덧붙인다.

"궁금증이 풀리셨다니 다행이야."
"매튜. 나는 도박중독자야."


"이번엔 이렇게 실패했으니, 다음엔 이렇게 하면 되겠다고 말야."
"대가리가 망가졌어."
"슬롯머신을 챠르르 챠르르 돌리면서 잭팟을 터뜨리는 것 말고는 떠올릴 수 없게 되었어."
"행운의 777! 네가 살아서 보내는 일주일."
"아무리 져도 승산이 없는 게임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더군."


험한 말을 워낙에 많이 했어야 말이지.
어떤 말이냐고 물어보면 더 기분이 상하겠지.
잠자코 있는다.

"...그게 말야. 사실 이 일주일은 내 욕심이었거든."
"너는 이 미친 짓을 거치지 않고도 살 수 있는 방법이 있었어."
"줄곧 그래왔지."
"하지만 외면했어."
"왜냐면 내 마음은 음, 더러운 게 달라붙기 딱 좋거든."

"나 만큼 이 짓을 오래한 놈이 또 있겠나."

손을 뒤집어도 본다.
"다른 방법이 뭐였던 간에..."
"혹은 그게 도박사가 슬롯머신을 당기는 짓었던 뭐였던지."
"살면서 나를 위해 너처럼 해준 사람은 없었어."
"고마워." 카일의 뺨을 두드린다.

"그래. 맞아."
미소 짓는다.
:일견 뿌듯해 뵈기도 한다.

마주 미소지으며 잡고 있던 손을 놓는다.

"이제, 우리 둘 다."
손을 펼쳐 매튜의 허리춤을 가리킨다.
:상아 조각의 무게가 느껴진다.

"이제 다시 만날 수 없는건가?"

고민하듯 입을 내밀고 눈을 동그랗게 뜬다.
"흠, 그렇다고는 하더군."
"음... ."
손을 내린다. "매튜. 아직도 내가 왜 그랬는 지는 모르겠다만."
"모르겠어. 술에 취해있었을 지도 모르지. 혹은 다른 거나."

"이상한 일이지. 이제는 아주 오랫동안 계속 그 생각만 해온 것 같아."
"레테의 말을 듣기 직전에도 그랬고, 들은 후에도 그랬고, 이 곳에서 눈 뜬 시점에서 그랬고, 오고 나서는 더더욱 그래."
"음." 헛기침을 한다.
매튜의 얼굴을 말 그대로 뚫어져라 본다.
세세히 관찰하듯.

"나 몇 년 후의 너를 만난 적이 있어."


"스포일러 미안."
“하여간, 그 때 네가 나를 보는 눈빛이 말야. 꼭 못 볼 걸 보는 마냥.”
"그래서 안 받으려 했어. 네 선물."


“그런데 이번에 내가 결혼을 한다고 거짓말을 하자마자, 음.”
"그 때 네 눈에서 본 것과 비슷한 것을 봤어. 널 보는 내 표정에서."
"그러고 보니 뭐가 어떻게 된 건 지 알겠더군."
"동시에 확신이 들었어. 이번만은."

"네가 살았으니 우리가 멀어진 것일 거 아냐."
:그가 하는 말은 쉬이 이해가 되는 구조는 아니다.

"실망했겠네."

"뭐, 하지만... 이제 와서 말한다만은."
"역시 내 손으로 그렇게 만들고 싶진 않군."
"내 말은, 아니, 이게 내 잘못이야?"
"우리가 멀어지는 거 말야, 매튜."
"난 내 잘못이라고 확신했어. 그런데 내 잘못일까?" 추궁하기 시작한다.

"아니."
"멀어지는데에는 여러가지... 상황같은 게 있을 수 있잖아."

셀 필요가 없었다.
"그래."
"그거 아나?"
"이렇게 멀리 돌아 올 필요가 없었어."
"멀어지는 데 여러가지 상황이 있을 수 있고,"

"무슨 말인 지 알겠나?"
대답을 종용한다. 몰라도 알라는 식이다.

얼결에 대답한다.

조각을 건네준다.



"안되겠어?"

미소가 곧 이를 드러내고 씩 웃는 웃음으로 변한다.
"...매튜."
"난 그 책이 필요했어."
"왜 그랬어."

아.
손으로 이마를 덮는다.
"여러번 해봤다며."
"외울 때 된 거 아냐?"

"그 여자가 가져다 놨나 봐."


"몇 번 더 시도한다 한들, 나는 여기서 쳇바퀴를 돌 뿐이야."
"그러니까.."
"난 벽을 향해 돌진할 거야, 이제."
"너를 찾으러 다닐 거야."
"만나지 못한다는 게 어딨겠나."


솔직하게 말한다.
"네가 결혼한다고 말했을 때도 포기를 못했어."
"대체 왜 여기에 온거야?"
남탓도 해본다.

:불어터진 해골바가지 같은 얼굴이 불쑥 다가온다.

"네가 여기서 꿈이나 꾸며 누워있는 동안 병원비가 얼마나 많이 나가겠나."
"여기에 왜 왔냐고."
"난 아직 너랑 하고 싶은데, 못 해 본 게 아주 많아."
"몇 개는 , 음," 눈을 굴리며 어깨를 으쓱인다. "여기서 해 봤지만,"
"어쨌든 간에. 매튜. 포기를 못한 것은 나도 마찬가지야."

"내가 집착과 정욕의 화신이라고." 어깨를 들썩이며 빙글댄다.

시큰한 눈가가 조금 축축해진다.
"네 인생을 내 손으로 망칠 수가 없어."
칼집에서 칼을 뽑는다.
"정말이야, 이러기 싫어."
"젠장할 나는 네가 날 찾을 확률 따위에 걸고 싶지도 않아."

"여기에 너를 가둬둘 수가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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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결혼생활도 망칠 수가 없어."

"날 알면서 이 정도로 고평가해주는 것도 너 뿐일 거다."
"매튜, 매튜."
나지막히 부르며 어깨에 손을 얹는다.
칼을 뽑은 손을 붙들고 제 가슴으로 끌어올린다. 코 앞 까지 다가 와서 뺨에 찬 숨을 흘린다. 웃음기 없는 목소리로 말한다. "날 죽인다며."
"그러니까 네 말이 맞아."


"언제까지나 너는 내 형제고, 가족이야."


칼날이 살을 찢고 파고드는 감촉을 느낀다.
"네가 행복하길 바라."
한손으로 잡고 있던 칼을 두손으로 쥔다.

"... 음," 올라오는 것을 체액을 삼키며 입술을 한번 안으로 말았다 귓가에 대고 입을 연다.
"네가 눈을 뜨면 나는 거기에 있을 거야."
칼을 쥔 두 손 위에 제 왼손을 올린다. 마지막 힘을 악력에 모으듯 손이 질려 떨릴만 치 강하게 잡는다.
눈을 가늘게 뜨며 웃음기 없이 속삭인다.
"사랑해, 매튜."

"이 말을 입 밖으로 못 내뱉어 봐서 널 보고 싶었나 보군."
:다정함이나 따뜻함이라곤 없는, 외려 단단해 차갑게까지 느껴지는 목소리와 맞닿은 체온이, 이상하게 멀리 느껴진다.

“내가 널 찾아갈 거야.”
"알겠나, 매튜?"
"나는 널 찾아갈 거야."
"네가 어디에 있든."

"기다리고 있을테니..."
뒷말을 고른다. 입가가 떨린다. "그냥 잘 지내고 있어."
헛웃음을 짓는다. "제발 식사거르지 말고, 또..."
고개를 숙이고 카일의 어깨에 이마를 댄다.
:그가 당신의 마지막 말을 들었는 지는 모르겠다. 어느새 기댄 머리가 차츰 기울기 시작한다.
차츰 차츰 목소리가, 현실이라 생각한 감각들이 멀어진다.
물이 마르고 비가 그치고 숲이 소멸되는 것을 느낀다.
그리고 모든 것이 사라진다.

:...
...
얼핏 어떤 소리가 의식 저편에서 차츰 차츰 올라온다.
그것은 새 소리,
주방의 무언가 타는 소리,
헝겊이 물을 짜내는 소리가 아닌...
:문이 열리는 소리.
의자가 끌리는 소리.
바퀴가 구르는 소리.
그리고..
심박계의 소리..
...
:...
그러나 그 모든 소리는 먹먹하게만 들린다.
잘려나가 뭉툭한 왼쪽 귀로는.
... 바람이 이마를 스친다.

:살며시 눈을 뜬다.
오랜 어둠 끝에 햇살이 눈꺼풀 사이를 비집고 들어온다.
천장이 눈에 들어온다.
안 봐도 뻔하지. 병원이다.
지척에서 인기척이 느껴진다. 혼자 있지 않다.

정신이 없다.
빛에 눈이 찔려 찌푸린 채로 손을 휘젓는다.
허공을 휘젓는 손이 링거줄을 끌어들인다.
종이 따위를 내려놓는 소리가 들린다.
조금 떨어진 곳에 앉아있던 이가 당신을 향해 고개를 돌린다.
눈이 마주친다.
그는 눈이 동그랗게 뜨이더니,




"오랜만이네. 매튜."

입을 열면 쇳소리가 난다.
"레오네."

:체온이 느껴진다.
사람 같은 온기, 따뜻한 체온.


:기억 난다.
아주 생생하다.

"..." 잠깐 고개를 떨군다.
"미리 사과할게."
"네게 기회를 줬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어."

기억난다, 생생하게.
알바니아 놈들, 하고 중얼댄다.
"가만히 두셨다고 했으면 섭섭했을 거예요."
"불가사리 밥으로 주셨겠죠?"

"자고 일어나더니 옛날 센스가 돌아왔군."
겹쳐 잡은 손 위에 제 이마를 올린다.
매튜를 본다. "네게 부족한 것은 잠이었나 봐."

"덕분에 푹 잤다는 소리는 못하겠네요."
킬킬댄다.

표정이 풀린다.
"매튜."
"잘 돌아왔어."

"고마워요."
레오네가 걱정 많이했겠군, 생각한다.
:머리 아래 기댄 베개가 푹신하게 느껴진다. 창 밖에서 새소리나 불량 청소년들이 떠드는 소리가 제법 시끄럽게 느껴진다. 손목이며 발목이 조금 뻐근해 불편하지만 그것말고는 괜찮다.
오늘은 날씨도 꽤 좋을 것 같다. 좋든 좋지 않든, 모든 것은 온전히 지금의 당신의 것이다.
햇살도, 바람도, 추위도, 더위도,
오늘은 당신을 위한 오늘이다.
...
...



농담을 건넨 뒤에 덧붙이길,
"레오네 밑에 들어온 이후로 한 번도 그만두고 싶다고 생각한 적 없어요."
"지금도 마찬가지고요."

"나도 이런 말을 듣고 감명받고 싶은데,"
"이 자리에 너무 오래 앉아있었어." 농담을 하듯 말한다.
"처음 한 말 말야."
"사실 그 반대인데 ... ,"
아쉽다는 듯 눈썹이 올라간다.

"매튜, 서부의 주제페 로렌조 기억 나나."
"너도 두어 번 봤었는데. 그 쪽 권역 카포 말야."

"서부에는 양조장이 있어."
"보리밭도 있지."
"매튜, 내가 전할 것은 소식 뿐이야."
"네 힘으로 얻어낸 자리야."
"후보는 많았지만, 결국 네가 적임자가 되었어."

"와, 그거 정말..."
"정말이에요?"
믿기지가 않는다는 투. 그리고 머뭇댄다.
"그래도 괜찮겠어요?"

"내 걱정을 하는 거야, 네 걱정을 하는 거야?"
진심으로 묻는 투다.


"세상에, 매튜... ."
"그 말을 들으니 정말 떠나보낼 때가 된 것 같네."
농담도 반이지만 진담도 반이다.
"실감이 나."
"...하지만 말야, 내가 그간 너한테 너무 의존했나 보네. 이런 소리도 다 듣고."


마찬가지로 뭐라 설명할 수 없는 기분이 된다.
"서부가 먼 곳도 아니잖아요."
"제가 레오네의 사람인 건 모르는 사람도 없는데요."
"그렇죠?"

시선을 아래 쪽 어드메를 보며 한 번 더 답한다.
"그렇지."
"그러니 가서도 잘 해."
고개를 들어 매튜를 본다.
"인정받은 것은 네 업적이지만, 자리에 대한 추천은 내가 했어."



